강 론 말 씀

2021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dariaofs 2021. 1. 19. 06:01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 뜻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성찰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자 지켜보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예수님처럼 훌륭한 스승의 제자들이라면 율법 정도는 응당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아냥이 깔린 항변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뒤 일곱째 날에 쉬시면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창조"만큼 "쉼"도 사랑하셔서 피조물 중 각별히 당신 모상을 나눠주신 사람을 쉼으로 초대하셨지요.

안식일은 하느님 앞에서 영육의 쉼을 통해 원기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이익을 위한 일체의 경제활동을 중단함으로써 종들과 가축들, 심지어 땅까지도 쉬게 해 주는 것이 본래 정신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생계를 지탱하는 노동에서 손을 떼라고 하다보니 안식일에는 세세한 규정이 많이 붙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서는 안 되는 금지 명령, 부정 명령이 많았지요.

오늘 복음 속 바리사이들은 밀이삭을 뜯어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제자들의 행동을 도둑질이 아니라 추수에 준하는 노동으로 말도 안 되게 확대해석해서 제동을 겁니다. 지나친 금지의 필터가 왜곡되고 굴절된 시야를 양산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마르 2,26)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 안의 일화를 들어 바리사이들에게 되물으십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지만, 안식일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일깨우시는 겁니다. 때로 금지 규정이 사람을 더 경직되고 편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금지 명령은 신앙을 소극적이고 위축되게 하기 쉽지만, 그래도 금지 명령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긍정 명령은 자유롭게 사랑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지만 자칫 방종으로 흐를까 염려하고 경계하는 눈도 있지요. 성숙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지만, 바로 그 신앙의 성숙이 그리 만만한 경지가 아니기에 어려운 겁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마르 2,27)

중요한 건 하느님께서 왜 그걸 바라시는지 알아듣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금지 조항보다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앞서겠지요. 그랬다면 생명의 원기를 회복하는 일에는 너그럽고 허용적이 될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우리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과 맹세를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히브 6,17)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복"과 "번성"을 약속하셨고 이 계약은 그분과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유효합니다. 진리이신 하느님께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니 두려움에 싸여 해서는 안 되는 일만 적당히 잘 피하면서 사는 것보다, 예수님처럼 당당히 사랑하며 나아가도 좋습니다. "정녕코"(히브 6,14)라고 선언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어떻게든 당신의 사랑을 믿도록 확신시키시려는 강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

예수님은 안식일에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안식일을 풍요롭게 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요즈음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주일을 잘 지킬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율법적으로 따지자면 주일 규정을 어겼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럴 때 일수록 생명을 살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듣는다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크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릅시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괜찮다 하시고, 또 앞장서 가시니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아갑시다.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벗님!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자유로이 사랑을 선택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