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드러납니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리인 레위를 부르십니다. 레위는 복음사가 마태오로 알려진 인물이지요. 이 부르심 대목이 마태오복음에서는 있는 그대로 "마태오"라 표기되지만,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레위"라 불립니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2,15)
레위 집에서 벌어진 잔치에 "많은 세리와 죄인도" 함께합니다. 말하자면 레위의 직업적 동료들이나, 서로 비슷한 평판을 받는 이들이 몰려온 겁니다. 그들도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었나 봅니다. 자신들을 소외시키거나 함부로 내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도 있었겠지요.
세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혈세를 과중히 받아내어 부당한 이득을 착복하고 나머지를 로마에 상납하는 이들이고, 공공연하게 죄인이라 불리는 이들이라면 아마 율법이 정한 여러 규정을 지킬 수 없었던 이들일 겁니다. 그들과의 접촉으로 불결하게 될까봐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 사제들은 상종하기조차 꺼리는 이들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벗이 되어 주십니다. 종교 기득권층의 눈에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며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이 늘 불편했을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선한 의인이면서도 상종 못할 인간들 곁에 서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시니까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불평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이 오신 목적을 밝히십니다. 그런데 오늘 제게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이 슬쩍 삼키신 말씀들이 들리는 듯합니다.
"나는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이들)을 부르러 왔다."라고요.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기준으로 의인과 죄인이 갈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뒤에는 믿음이 그 기준이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끝까지 믿지 않는 이들은 스스로 구원의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고요.
제1독서에서는 죄인들을 품으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5)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잠시 가면을 쓰신 것도 아니고, 사람인 척 행세만 하신 것도 아니지요. 그분은 인간의 육을 취하심으로 보통의 사람이 겪는 약함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겟세마니에서의 고뇌와 십자가 위에서의 절규가 이를 생생히 증언하지요.
그렇기에 예수님은 인간의 약함을 동정하고 연민하십니다. 그분 마음에는 우리를 향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애잔히 흐릅니다. 다만 유혹에 넘어가거나 죄를 짓지는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오히려 그분을 죄인으로 몰아 극형에 처했지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히브 4,14)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믿는 이는 구원 안에 있습니다. 혹시 의혹과 불안을 안고 어정쩡하게 구원을 의심하고 있다면 스스로의 믿음부터 성찰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약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한 확신이 되도록 여러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성제, 그분을 모시는 성체성사, 죄를 사해 주시는 고해성사, 그리고 말씀과 기도와 자선, 선행과 희생 등 다양하지요. 그중에서 "말씀"은 우리 영혼이 하느님을 깨닫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믿음을 견고히 하는데 탁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고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말씀이 우리 믿음을 순수하게 해 주시고, 또 거룩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늘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지만, 매일 다가오시는 말씀에 힘입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매일 말씀에 머물러 그 빛에 영혼을 쬐이고, 그 손길에 의탁하는 이는 나날이 새롭고 견고해지는 영혼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히브 4,16) 이 말씀이 곧 죄인이며 의인인 우리에게 다가오신 진리입니다. 죄인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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