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마르 2,5)
중풍 병자를 들것에 눕혀 데려온 사람들이 군중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가기 어렵자 지붕을 뜯어 병자를 내려보냅니다. 이 수고를 감수하는 노력 자체가 그들이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확고히 믿고 있다는 증거지요.
예수님은 병자의 상태보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위로를 건네십니다. 육신의 병을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에서 "죄의 용서"는 육적인 치유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군중 사이에 끼어 있던 율법 학자들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율법 연구와 해석이 업인 그들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 분명하니까요. 유일신인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는 유다교에서 다른 누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면 자신들의 신앙기반이 흔들려 버릴 수 있으니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마르 2,12)
지금 예수님 앞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믿는 이들은 치유 기적 앞에서 제 일처럼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은혜를 입은 당사자는 물론, 믿음 하나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동료들의 기쁨은 더 말할나위 없겠지요.
반면 믿지 않는 이들은 더 큰 의혹과 불신에 휩싸입니다. 속 안에서는 후일 벌어질 베엘제불 논쟁까지 부글대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똑똑한 머리는 지금 출신과 가문, 지역과 직업 등등 예수님에 대한 앎으로 복잡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히브 4,2)
히브리서 저자는 마치 오늘 복음 속 율법 학자들의 속을 들여다 본 듯이 이야기합니다. 눈 앞에서 펼쳐진 기쁜 소식을 함께 보고 들었건만 그 기쁜 소식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한 이들의 가련함이 안타깝습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히브 4,3)
히브리서 저자는 하느님의 안식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하다고 말합니다.(히브 4,1 참조) 안식처나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히브 4,3 참조)
믿음은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안식처에 들어가는 것을 순리로 여깁니다. 이미 이루어 주신 선물을 누리는 결단이기도 하지요.
반면 문자에 매인 완고함은 의심하고 증거를 요구합니다. 나날이 쌓여가는 표징에는 눈을 감고 계속 다른 표징을 주문하지요. 자기들이 믿을 때까지 이 불신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수호한다고 자처하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은 요원할 뿐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안식처가 눈 앞에 있어도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나름의 신념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설령 안식처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자신이 세상에서 부정해왔던 모든 것들에 둘러싸여 괴리감과 이질감만 커질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치유받고 기뻐하는 이와, 동료의 치유로 보람을 느끼는 이들, 또 이 기적 앞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보시며 함께 기쁘셨을 겁니다. 동시에 여전히 돌 같은 마음에 새겨진 문자에 파묻혀 구원의 기쁜 소식을 거부하는 이들을 보시며 안타까우셨겠지요. 예수님은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믿지 않는 이들이라서 안타까우십니다. 믿지 않는 이에게는 얼마나 많은 은총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사라지는지 아시니까요.
지금 여기, 매일의 삶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어둠과 죄악, 자신의 나약함과 죄스러움, 타인의 약점과 불화가 매순간 우리의 믿음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으면 쉽게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안식처를 믿고, 죽음으로 우리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으며, 넘어져도 다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해 주시는 성령을 믿으면, 이 믿음이 우리를 저 휘장 안 거룩한 처소로 데려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믿는 이는 기쁨에 찬 찬양을 올리는 이입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지요. 하느님께 찬양의 기도를 그치지 않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찬양으로 주님께도 참 기쁜 오늘이 되실 겁니다. 미어서 복되신 성모님을 닮은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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