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가짐에 대해 일러 주십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르 2,18)
단식은 육신을 비워 맑은 정신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수행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앞에서 뉘우침과 통회, 간청의 표현으로 옷을 찢거나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거나 단식을 했습니다. 단식은 단순히 건강을 위해 음식 섭취를 중단하는 식이요법을 넘어서, 자신의 기본 욕망을 제어하고 인내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일종의 보속 행위가 되기도 했지요.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 2,19)
예수님께서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결합하는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곁에 두고 단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혼인 잔치는 기쁨과 축복의 장이어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대사제이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대사제는 ...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히브 5,1)
아론의 후예인 대사제는 자신이 지은 죄와 백성이 지은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축복을 얻기 위해 예식을 거행합니다. 율법이 정한 대로 예물과 제물을 바쳐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인간 대사제의 행위는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느끼실 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히브 5,7)
그와는 달리, 지파의 혈통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은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경외심"에서 출발합니다.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의 뜻을 기꺼이 당신 것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 대사제들이 드리는 예물과 제물은, 많은 경우 백성들로 인해 하느님이 몹시 화가 나셨을 테고 우리가 그걸 풀어드려야 한다는, 징벌과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이 경우 삶에서 감사꺼리를 떠올리며 찬미와 기쁨의 제사를 바치기보다 죄와 어둠에 집착해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부작용이 크지요. 또 자칫 진정으로 통회하는 마음 없이 물질과 예식으로 때우는 요식행위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이럴 때 마음을 보시는 주님은 예언자를 통해 '이런 제물은 역겹다.'고까지 하셨지요.(이사 1,13 참조)
예수님의 제물은 당신 자신이셨고 제사는 사랑과 순종의 의탁이었지요.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신뢰와 사랑에서 우러나는 제사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단식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랜 역사 동안 이스라엘이 충실히 지켜온 단식의 가치를 폄훼하시지 않으시지만, 단식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새롭게 보자고 초대하시는 겁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 중 하나인 단식이 영혼이 빠진 형식적 율법 준수나, 엄벌에 처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부정적 두려움에서 나왔다면, 이제는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그분 현존의 기쁨을 영육으로 실컷 누리다가, 그분을 빼앗기는 날, 사랑을 잃은 애끓는 비통과 슬픔의 표현으로 바치면 된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혼인잔치 안의 기쁨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뿌리에서 생성해 성장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새로움은 이전의 것을 부정하는 무엇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회복이고 우리 의식의 전환일 겁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 죄의식이나 두려움보다 감사와 찬미에서 흘러나오길 그분은 원하십니다.
이미 용서 받은 죄에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주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괜찮다는데!" 하고 등을 두드리시니, 어깨를 펴고 주님께 나아갑시다. 우리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 사랑에서 솟아나는 예물과 제물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신랑과 함께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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