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드러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예수님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라도 어둠에 묶여 있는 이라면 예수님의 시선이 머물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치유 행위를 하면 고발하려고 벼르는 무리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으시지요.
안식일은 생명을 증진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불편하고 아픈 사람 입장에서 안식일은 치유에 더욱 적합한 날이 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고착된 문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쯤 더 아프다고 무슨 큰 일이 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아파보지 않았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율법 수호가 별볼일 없는 사람의 안위보다 절박하기 때문일까요?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마르 3,5)
예수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참 아프고 슬프신 것이지요. 무엇보다 회당에 앉은 누구도 그 사람의 고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선 슬프셨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 오히려 그 사람의 고통을 올가미로 악용하는 못된 마음이 아프셨을 겁니다.
"손을 뻗어라."(마르 3,5)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금지된 게 많은 안식일이라는 사실도, 당신을 노리는 음모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으시지요. 안식일이라고 생명과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생명과 사랑은 안식일이나 평일이나 그치지 않고 이루어져야 하는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닥칠 위험을 아시면서도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이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히브 7,16)
예수님의 존재가 율법을 초월하시니 그분의 사랑도 거침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히브 7,3) 멜키체덱처럼 예수님께 죽음이라는 "끝" 따위는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6)
여러 기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바리사이들이나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위험 인물로 보고 이미 죽이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즉 방식을 의논하는 단계에 이른 듯하네요. 안식일의 치유, 누군가에겐 회복과 치유의 기쁨을 주었지만, 누군가는 더 거칠고 깊은 악과 손을 잡는 날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구하고 선을 이루는 일에는 시와 때의 구분이 없습니다. 사랑은 미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구호활동은 눈에 들어온 그 순간이 가장 적합한 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긴급하고 절박한 요구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내게 사랑을 받고 싶으신 주님께서 누구를 보내시는지 영육의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와 손을 맞잡고 싶은 누군가가 우리 주변에서 움츠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그를 통해 우리 사랑을 기다리고 계시니 주저말고 사랑을 베풀면 좋겠지요. 시작도 끝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니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사랑을 향해 성큼 나아갑시다. 예수님과 함께 용기있게 사랑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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