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미사의 모든 것] (32)성체성사

dariaofs 2021. 3. 14. 00:10

주님의 마지막 만찬 기념하고 십자가 희생 재현하다

 

▲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상징이고,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사진은 한 사제가 미사 중에 거양성체를 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나처음: 예수님께서는 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나요?


라파엘 신부: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알려 주시기 위해 성체성사를 세우셨단다. 성체성사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도록”(요한 15,13) 이끈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거란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기 전에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지.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몸과 당신 피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계셔요.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고 강조하셨단다.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본성 자체인 사랑의 진리를 보여 주신다”(「사랑의 성사」 2항)고 말씀하셨어요.

나처음: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과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조언해: 신부님께서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상징이고,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는 것이라고 지난번에 말씀하셨잖아.

나처음: 그래 알고 있지. 그런데 왜 성체성사가 십자가 희생의 재현이라는지 이해가 안 돼서….

라파엘 신부: 처음이가 아직 예비 신자이니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 참하느님이신 분이 참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뭐니?

나처음: 인간을 구원하시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고자 하심이라고 배웠어요.

라파엘 신부: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된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셨다(1요한 4,10)는 것을 처음이도 잘 알 거야. 하느님께서는 속죄 제물인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단다.(2코린 5,19)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당신 사명을 잘 알고 계셨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고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1베드 2,24) 당신 죽음을 속량을 위한 죽음으로 받아들이셨어요.

 

주님의 속량 곧 ‘십자가 희생’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치르신 우리의 죗값이란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지.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인간 구원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 제사’라고 하며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라고 고백하고 있단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면서 당신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바로 그 ‘몸’이며,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마태 26,28)이심을 미리 보여주셨단다. 그래서 성체성사를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하는 거란다.

죄 없으신 참하느님께 인간이 되시어 우리 죗값으로 당신 목숨을 내어 놓으신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을 끝없이 사랑하신 자비 때문이란다. 최후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도, 파스카의 속량 제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것도 모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때문이지. 그래서 교회는 매 미사 때마다 영성체 전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성체를 향해 반복하고 있단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우리에게 당신 희생 제사에 참여하기를 명하셨단다. 이는 우리가 미사에 어떤 자세로 참여해야 하는지 잘 일깨워주시는 말씀이기도 해.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의 찬미, 기도, 노동, 기쁨, 슬픔 등 우리 삶 모두를 주님과 결합되길 원하신다는 걸 명심해야 해.

나처음: 이제서야 성체성사가 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연결되는지 알겠네요. 성체성사를 이해하는 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큼 어렵네요.

라파엘 신부: 그래서 성체성사를 “신앙의 신비”라고 고백하잖니. 빵과 포도주가 주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뀌는 이 실체 변화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지. ‘신앙의 신비’라는 경이로운 고백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교회는 “믿음은 예식 안에서 표현되고, 예식은 믿음을 강화하고 굳건하게 한다”(「사랑의 성사」 6항)고 밝히고 있단다.

조언해: 성체성사가 신비라고 고백해도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실재하시는 것이잖아요.

라파엘 신부: 맞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체를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을 보면 삼위일체를 본 것이다”고 가르치셨단다. 성체의 신비 역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빵’이 바로 주님이신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지.

조언해: 그런데 신부님. 외람된 질문인데 거양성체를 할 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사제가 말을 하는 데 “내어 줄 내 몸” “흘릴 피”는 미래형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현재형으로 “내어 주는 내 몸” “흘리는 피”라고 해야 미사가 거행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성체성사가 현재화되고 실재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닌가요.

라파엘 신부: 아주 좋은 질문이구나. 사실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복음서 본문을 보면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 quod pro vobis dater.),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Hic est calix novum testamentum in sanguine meo, qui pro vobis fundetur)라고 현재형으로 기록돼 있단다.(루카 22,19-20) 미래형이 아니지.

우리말 미사 경본에 어떻게 미래형으로 옮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만찬 때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재현하려면 주교님들과 전례 학자들이 모여 이를 바로 잡으려는 조치가 필요하겠구나. 언해가 참 좋은 지적을 해 주었구나. 고마워.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