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과 기적의 관계를 보여 주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 가셨을 때, 한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시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였지요.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 곧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심을 표징 유무와 효력으로 가늠하려 한 듯합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9)
지금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몹시 절박하고 다급합니다. 그가 믿기 때문이지요. 그는 예수님이 자기 아들에게 가시기만 하면, 예수님을 모셔가기만 하면 아들이 치유되리라 굳게 믿기에 지금 한시가 급한 겁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
그 아버지의 간청에서 진정한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를 아들에게로 보내십니다. 그의 믿음이 이룬 바를 확인하게 해 주시려는 겁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50)
애초 그 사람의 의도는 예수님을 아들이 앓아 누워 있는 카파르나움까지 모셔가려는 것이었지요. 물론 목적은 아들의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나았다니, 예수님을 모셔갈 필요가 없게 되어 버렸네요. 주님이 반드시 눈앞에 계셔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긴 그의 인간적 믿음이 이제 훌쩍 자랄 것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언제 들어도 행복하고 가슴 뿌듯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선포됩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황폐해진 땅, 무너진 성전, 모진 유배살이로 절망한 백성에게 주님의 약속은 새 희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모든 실패와 불행의 원인인 자기들의 죄악과 부정을 주님께서 깨끗이 잊어 주신다고 하시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리려면, 믿어야 합니다. 그저 '진짜 그럴 수 있을까? 어디, 한번 보자. 아님 말고...' 하는 식으로 물러앉아 지켜보는 관찰자나 방관자는 설령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서, 제 존재 안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니까요. 새 창조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이사 65,18)
기쁨과 즐거움은, 꿈이 무너져 버린 우리의 삶에도 빛이 스며들고 있으며, 그 빛이 꼭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울 것임을 믿는 이에게서 볼 수 있는 표징입니다. 이 약속은 믿지 않는 이에게는 죽은 문자로 남지만 믿는 이에게 반드시 실현되는 기적입니다.
표징과 믿음과 기쁨. 이 셋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 영적 여정을 함께 동행하는 벗들입니다. 꼭 순서를 정하지 않아도 모두 잘 있는지, 어느 것이 빠졌는지, 인간적으로 치우침은 없는지 감지하면서 그 균형 안을 걷는 것이 신앙의 순례길인 듯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의 고통스럽고 절박한 아픔을 주님께 겸손히 아뢰고, 그분의 처방이 꼭 우리가 바라던 바가 아니어도 굳게 믿으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믿는 이에게는 표징과 기쁨이 함께할 것이니, 믿는 그 자체로 이미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믿기에 기쁘고 행복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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