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의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십니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요한 6,3)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빵의 표징이 "파스카가 가까운 때"에 일어났다고 시간적 배경을 특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파스카 음식을 나누는 마지막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사건과 연관성을 암시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요.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군중은 그 수가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리이고, 장소는 장터나 민가가 아닌 "산"입니다. 그 많은 군중을 먹이기 위해서 빵은 물론이고 돈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지요. 예수님은 "어디"를 물으셨는데, 필립보는 빵값을 헤아리고 안드레아는 가진 소량의 것과 군중 수를 대비하며 회의적으로 답하지요. 그걸 보면, 어느 조건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불가능을 먼저 떠올리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6)
장소가 어디건, 입이 몇이건 예수님은 그들을 배불리시려고 마음 먹으셨습니다. 당신 피조물을 먹이고 돌보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현실적인 제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대한 현실 앞에서 주저하고 회의하는 인간의 조바심과 한계의식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느님 계획을 막지 못합니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요한 6,10)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게 하신 곳에는 풀이 많았다고 합니다. 복음사가가 굳이 공간적 배경까지 기술한 이유는 이 말씀이 우리를 시편의 어느 아름다운 구절로 데려가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시편 23,1-2)
빵의 표징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푸르른 목초지로 이끌어 쉬게 하시고 배불려 주시는 참 목자이심을 부각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지요.
제1독서에서는 사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유다인들에게 주님께서 한 현자의 입을 통해 지혜를 전해 주십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사도 5,38-39)
가말리엘의 이 말은 그가 감정적으로 사도들을 시기하거나 경계함 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가말리엘은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오로의 옛 사울 시절 스승이었지요(사도 22,3 참조).
유다인들이 아무리 금지하고 위협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해도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의지가 이루어지는 순리이고 섭리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주님께서 무언가 하시려고 할 때 많은 장애물이 드러남을 체험합니다. 금전적으로, 시간과 공간적으로 현실적 한계가 크게 보이면 아무리 좋은 일이고 주님의 뜻으로 여겨져도 주저하고 회의에 빠져 서로 발목을 잡기도 하지요.
그럴 땐 한 걸음 물러나 하느님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고 그저 바라보는 것도 지혜이고 겸손일 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막으려 해도 어림없을 것이고, 그분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까요.
장정만도 오천 명에 다섯 개 빵과 두 마리 물고기는 분명 터무니없는 불균형이지만, 그것을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하느님께 감사로 바쳐질 때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가 세대를 거듭해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양식이 되고, 그분과 우리를 일치시켜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5)
빵의 표징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은 사람의 방식과 하느님 방식의 차이를 마치 쐐기를 박듯 명백히 대조시켜 보여 줍니다.
사람은 자기들 욕망과 의도에 따라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가 종종 있지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으면서요. 때로는 자신의 업적과 성취가 하느님 의지를 우선하는 것처럼 일단 밀어붙입니다. 주님께는 참 불편한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이 말씀에 머물러 하느님의 뜻을 관상하며 섭리에 순종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사심없이 기도하고 격려하며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바를 함께 기뻐하면 더욱 좋겠지요. 착한 목자이신 주님은 결국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살리시고,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요한 10,10) 해 주시려는 것이 그분 마음이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참 목자의 양들인 우리 모두의 행복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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