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12)
니코네모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아한 반응을 보입니다. "태어남"의 육적인 의미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영적인 일에 발을 걸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진정으로 영의 세계에 들어서지 못한 듯 보입니다.
"세상일"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많은 기적과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구해 주시려는 마음에서였지요. 그분은 질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빵을 많게 하고 죽은 이를 일으키심으로써, 한계 가득한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 군상들이 겪는 세상일을 하느님의 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늘 일"
어둠에 갇혀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구원하는 일은 하늘의 일,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려면 세상의 가치 기준이나 논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시스템과 제도 안에 묶인 시야로는 불공정이나 불평등, 장애와 차별, 고통과 억압이 원래 그런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 3,7)
세상 논리는 기득권층이 정한 데로 움직이길 바라지만, 성령은 바람처럼,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부는 바람입니다.
바리사이나 수석 사제들, 최고 의회 의원들은 정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구분하고 싶어합니다. 의인과 죄인의 기준도 명확하지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주신 율법을, 하느님 마음에서 사람을 떼어놓는 도구로 쓰는 듯 보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세상일에 역행하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보여 줍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사도 4,32)
예나 지금이나 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지닌 욕망의 목표입니다. '대다수'라 한 것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아예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비참하게 생을 마친 한 젊은 사형수를 믿기 시작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다투어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제 가진 바를 사심 없이 공동체에 내놓습니다. 수도 공동체들이 제도적으로 표방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실제적 노동으로 의식주는 물론 노후와 의료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사회인들에게는 언감생심, 그저 이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어려운 일이 당시라고 쉬웠을 리 없겠지요.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 4,33)
"세상일"에 묶인 이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바보짓으로 보이겠지만,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고 하니 "하늘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일"은 불균형과 차별을 숙명처럼 종용하지만, "하늘 일"은 모든 이가 귀하고 가치롭다고 다독이며 그 장을 펼쳐 줍니다. 이를 "영에서 태어난 이들"이 보여주고 있지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믿는 모두가 큰 은총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5)
초대 교회 신자들이 보여 준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에 자주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을 믿고 사랑하게 된 이후로 더이상 "세상일"에만 묶여 있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닥친 현실이 하도 절박하고 막막해서 "세상일"에 코를 박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때때로 마음을 드높여 하느님 마음을 살피고 "하늘 일"에 헌신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모든 것을 내놓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누고 섬기려 애씁니다. 율법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마음이 원하시는 바를 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이렇게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큰 은총을 누리며 행복하려면 믿는 우리가 먼저 시선을 "세상일"에서 "하늘 일"로 돌려야 합니다. 육의 사람을 벗고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라시는지 관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보잘것없는 한 개인인 나의 '새로 태어남'이, 모두가 큰 은총을 누리는 데 필수불가결한 몫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랑하는 영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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