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과 쇄신 이끌며 눈부신 사목적 성과 이룬 목자
신앙 내실과 복음화 강조하며
교회 성장·성숙에 크게 기여
성소계발에도 각별히 힘써
새천년기 향한 교회 방향 제시
교회 생명운동에도 큰 획
2006년 4월 21일 서울 명동 주교관 앞마당 성가정상 앞에 앉은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 제공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추기경으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정진석 추기경이 청주교구장과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이룬 사목적 성과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젊은 나이에 첫 한국인 청주교구장이 된 정 추기경은 가난했던 청주교구에 놀라운 성장과 성숙을 가져왔고, 새 천년기를 맞은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한국교회 전체에 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 첫 한국인 청주교구장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던 중 미국에 잠시 머물던 1970년 6월, 정진석 신부는 자신이 주교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초의 한국인 청주교구장이었다. 그것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구장 주교가 됐다. 당시 청주교구장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선교사가 맡고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늘 그랬듯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정 추기경은 교구 운영을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본당의 자립적인 운영, 또 하나는 한국인 사제 양성이었다. 아울러 신앙의 위기를 겪는 신자들을 위해 신앙 교육을 바탕으로 한 신앙 내실화와 복음화, 그리고 가정사목의 강화에 힘썼다.
특히 정 추기경은 자신은 굶어도 신학생은 양성한다는 각오로 성소계발에 힘써, 1990년 교구 신자 수 8만 명에 신학생 수 80명을 확보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러한 노력에 대해 “신자 수 1000명당 신학생 1명이라니, 전 세계에 이런 교구는 없다”고 치하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1970년 10월 3일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제2대 청주교구장으로 착좌하고 있다.서울대교구 제공
■ 28년간 청주교구 성장 이끌어
정 추기경은 교구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서 순교 영성에 주목했다. 박해기 교우촌이자 가경자 최양업 신부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 거점이었던 배티성지의 땅을 확보하고 성역화에 박차를 가했고 1999년 양업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사목과 사회복지는 정 추기경의 한결같은 관심사였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사회사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수도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정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수도회들의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병들고 약한 이들을 위해서 병원도 필요했다. 가난한 교구의 재정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1998년 3월 청주성모병원을 개원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고생을 모두 잊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그러던 중 정 추기경은 주한 교황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28년 동안 교구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복음화율과 신자 대비 본당 수, 사제 수 등에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이끌었던 청주교구를 떠나게 됐다.
■ 새 천년기 사목 쇄신
정 추기경은 새로운 세기를 코앞에 둔 1998년 4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 그해 6월 29일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됐다. 정 추기경은 이후 2012년 6월까지 14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며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면모를 다지고 새로운 천년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 추기경은 교구 시노드 개최로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친 친교의 교회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비 단계(2000년)·준비 단계(2001~2002년)·본회의 단계(2003년) 등 4년에 가까운 회의 여정을 거치며 논의한 내용들은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로」에 담았다. 총 208쪽 분량의 이 교서는 새천년기를 향한 서울대교구의 청사진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세상 안에서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노드를 통해 종합되고 확인된 변화와 쇄신의 여정을 걸어가던 2002년,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사목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을 공포했다. 이는 교회 대형화의 문제를 해소하고 친교와 일치를 바탕으로 하는 복음적 공동체를 위한 지역 중심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 제도, 지구장 중심 교구 운영, 공동 사목 등의 사목적 조치들로 구현됐다.
■ 가정과 생명
청주교구장 시절부터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 추기경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시대, 교회를 생명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했다. 그 첫걸음이 생명위원회의 설립이었다.
당시, 산업과 결탁한 의학과 과학은 무분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나섰다. 정 추기경은 “인간 배아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인 행위”임을 강조하고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발족하는 동시에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생명위원회는 교회의 인간 생명 수호 노력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생명운동을 펼쳐왔다.
정 추기경은 그밖에도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절 문화의 시대에 걸맞게 명동대성당 일대를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면서 민족화해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파주시에 민족화해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2006년 3월 25일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열린 정진석 추기경 서임 축하 리셉션에 참석한 신자들이 정 추기경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고 있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07년 11월 26일~12월 3일 실시한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앗 리미나’(Ad Limina) 일정 중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이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바티칸 미디어
2008년 12월 7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한 제1회 서울대교구 생명수호주일 미사 후 정진석 추기경과 신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진석 추기경이 2013년 3월 19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바티칸 미디어
■ 학자이자 사목자
정 추기경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불렸다. 1950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 과학자를 꿈꿨지만 전란 속에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신학도가 됐다. 신학교에서도 방대한 독서량과 탁월한 학업 성취로 유명했다.
뜨거운 학구열은 사제품을 받은 후에도 이어졌고, 이는 곧 왕성한 집필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정 추기경이 펴낸 교회법 관련 저서와 역서는 모두 65권, 1961년 사제품을 받은 후 매년 최소한 한 권씩의 책을 펴낸 셈이다.
그는 학자인 동시에 철저하게 사목자였다. 너그럽고 겸손하며 따뜻한 인품은 누구나 그를 가까이 여기게 했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라는 사목 표어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그는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만나는 어진 마음을 지녔다.
2012년 6월, 서울대교구장직을 물러나면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추기경은 “그저 매일을 ‘이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매순간을 살아갔기에,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기 동안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희망이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이었기에 그분이 주신 생명은 존엄한 것이며, 하느님 섭리를 탐구함에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박영호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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