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만남이 이어지는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두 개의 결정적 만남에 주목합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으려 말하였다."(창세 18,2-3)
"한 백인 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마태 8,5)
천사들을 환대하는 아브라함과, 고통받는 종의 치유를 청하기 위해 예수님께 다가온 백인대장의 모습이 겹칩니다. 둘 다 매우 겸손하고 진실된 태도의 영접으로 보입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창세 18,3)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고대 중동 사막 지역에서 나그네를 귀하게 대접하는 일은 축복을 부르는 관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길을 지나는 이들을 나무 아래로 모셔 물과 음식과 쉼을 제공하지요. 그는 나그네들이 하느님의 천사인 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믿음으로써의 행동이라기보다 선하고 관대한 인류애적 견지에서 그들을 섬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다가와 청합니다. 심지어 직접 종에게 가 주시겠다는 예수님을 자기의 비천함을 들어 만류하지요. 정복국의 군사 장교가 식민지 백성의 예언자(로 보이는 청년)에게 이토록 예우를 갖추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좋은 소양이나 성정을 넘어서 "믿음"에 근거하는 겸손과 확신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창세 18,5)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 8,13)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섬김을 받아들입니다. 영적 존재인 그들에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아브라함의 지향과 의지, 말이 실현되도록 자신들을 그의 손에 맡기지요.
예수님은 백인대장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의 겸손한 신앙고백이 그대로 이루어져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시는 겁니다. 그가 간절히 바라고 굳게 믿은 그대로 종은 치유될 것입니다.
제1독서의 뒷 부분에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과, 이에 대해 의혹을 품는 사라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의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공경하고 자부심을 갖는 선조지만, 그 믿음이 형성되기까지의 생생한 민낯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성경은 이를 감추지 않고 기록한 것이지요.
복음 대목의 후반부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든 이들과 예수님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병들고 약하고 고통을 겪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손길로 구마와 치유를 받아 온전함을 회복하는 역동적인 장면이지요.
물론 오늘 간절히 주님을 찾는 그들의 믿음은 언젠가 십자가형의 외침으로 변하고 말 나약하고 기복적인 믿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제1독서 속의 아브라함 부부처럼 그들 역시 아직 과정 중에 있음을 아시기에, 기꺼이 그들을 맞아 각자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지요. 아주 적극적으로 혼신을 다해 그들의 질병과 병고를 떠맡으십니다.(복음 환호송 참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예수님의 기쁨에 찬 감탄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 감탄은 백인대장을 넘어 우리를 향하고 있지요. 존재 전체로 주님을 맞아들여, 말씀으로 고백하고, 실천으로 섬기는 믿음은 그저 인간적으로 잘 형성된 인성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아직 과정 중이라 여전히 흔들리고 동요하는 섬약한 믿음일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말인 신앙고백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주님께서 우리 곁을 그저 지나쳐 가시지 않도록 신앙의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을 맞이하는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청한 바가 들어 허락되고, 우리의 겸손한 환대와 믿음에 그분이 감탄하시기를 빕니다. 반드시 우리가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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