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선택 기준을 보여 주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이 대목의 병행구인 루카 복음을 보면, 파견 받았던 일흔두 제자가 돌아와서 선교 여행의 성과를 보고할 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가득차 이 기도를 드리십니다. 제도적 신분이나 학식, 가문 등 세상 기준과는 거리가 먼 제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기뻐하고 감사하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분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지요. 영의 세계와 물질 세계는 추구하는 바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버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선택과 부르심, 소명에 대해 자기들의 잣대를 들이대며 이해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자기 모순에 빠지고 번번이 헛다리를 짚게 되지요. 세상 눈에 부유하고 탁월하고 출중한 이라도 아버지 시각에서는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세상에서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고요.
제1독서는 모세의 부르심 대목입니다.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모세는 불에 타면서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러 갔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당시 그는 미디안 땅에 몸 붙여 살면서 장인의 양 떼를 치는 처지였습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모세는 도망자입니다. 공소시효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 신세지요. 성장 시기를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지내면서 동족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충분히 수혈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집트인도 아닙니다. 혼인은 미디안 여인과 했고요. 그는 어느 편에서도 자기 소속을 주장하기 애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런 모세를 선택하십니다. 당시 거대 강국인 이집트의 파라오와 교섭을 할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로 그를 뽑으신 겁니다. 그런데 대표는 아무나 합니까? 롤러코스터 같이 출렁였던 자기 인생사를 내내 곱씹었을 모세로서는 두렵고 주저되는 게 당연하지요. 보잘것없는 한 인간으로서, 태초부터 계획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알 길이 없으니 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그저 막연했을 겁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하느님의 현존과 동반. 이것이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해 나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며, 모세의 소명을 뒷받침하는 표징이고 인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파라오 같은 타인이 그를 인정하기 이전에 본인 스스로부터 먼저 믿고 의탁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하느님의 선택 기준은 세상의 지혜나 슬기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비에 대한 겸손과 하느님 주도권에 대한 겸허한 수용, 그리고 순수한 의탁으로 받아안고 그분과 함께 안개 속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언젠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차츰 선명해리라고 믿을 뿐입니다. 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욕망까지 내려놓을 때 각성과 통찰의 순간이 허락될 수도 있습니다. 이조차도 그분 마음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다행히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시려고 마음에 두신 사람들입니다.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이 의지 덕분에 죄인이고 부족한 우리가 아버지의 현존과 동행 속에서 나날이 새로워지고 성장합니다.
비록 세상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으로 그분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은총에 감사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철부지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를 찬미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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