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저희 작은형제회의 제2의 창설자라고 불리는 성 보나벤투라 축일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순례 여정이 버겁고 힘겨운 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 함께하고 싶어 이 세상에 오셨지요.
그분은 멍에와 짐에 짓눌려 다리에 힘이 풀리고 휘청대면서 갈길을 몰라 헤매는 우리에게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 정신력이 약하다'는 식으로 냉혹하게 채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고통의 극치를 당신이 친히 직접 겪으셨기에, 연민 가득한 사랑의 시선으로 애틋이 바라보시며 어떻게든 좀 더 나은 삶으로 옮겨 주시려고 애쓰시지요.
제1독서에서는 당신 백성을 새로운 삶으로 옮겨 주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나희를 끌어내어,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탈출 3,16-17)
하느님은 모세를 부르시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과 울부짖음을 들으셨고, 친히 그들을 찾아가 그 참상을 살펴 보셨습니다.
이처럼 직접 찾아오시어 삶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에서 훗날 이루어질 성자 예수님의 강생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있는 나"(탈출 3,14)이신 참 존재자이시면서 피조물의 행복을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시고 섭리를 풀어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의지에 최선의 노력으로 응답하면서 구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멍에를 지기 위해 먼저 세상의 멍에와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고생스러웠던 경험뿐만 아니라 안락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욕망도 함께 떨쳐버려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면 세상살이에서 즐겨 애용했던 우월의식, 이기심, 교만, 자기영광 따위가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계획을 믿고 떠나긴 했지만 자유와 해방이 당장 거저 주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반항하고 불평하고 심지어 이집트의 시간을 미화해 그리워하기까지 하게 만든 광야의 험난한 시간을 피할 수 없었지요. 그들을 찾아오셔서 이끌어내신 하느님의 사랑을 무참히 배반한 순간도 성경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광야는 계약의 백성이 되기 위한 준비의 시공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진정한 안식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광야의 시간이 요구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배우는 과정 안에는, 우리가 진정 자판기 아닌 인격신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내 이익만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의 공동선을 바라는지, 자기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사건과 관계들이 줄을 잇게 됩니다. 이 검증의 광야를 거치면서 차츰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진 그분의 벗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안식은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웃과 형제, 세상이 모두 평안하지 않으면 우리의 안식은 그저 먼 일일 뿐이지요.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 모두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우리가 절절히 체험하는 바이지요.
우리 모두 탐욕과 자기영광, 이기심을 내려놓고 정말로 가뿐히 주님의 멍에를 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편하고 가벼이 안식하기를 축복합니다.
성 보나벤투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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