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민수 21,4)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헤맬 때의 일입니다. 척박하고 불편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광야를 이동하다 지친 백성이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했지요. 공동체의 죄는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조급함은 미세한 감정적 동요로 끝날 것 같지만, 잘 다루지 않으면 주위에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관과 공격성으로 이어져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도 있지요. 공동체는 본래의 목적과 지향을 잊고 불평 불만으로 본질을 왜곡해 하느님과 대적하게 됩니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 21,9)
진노하신 하느님께서 불 뱀을 보내 백성을 벌하셨지만, 뉘우친 백성이 모세를 통해 간청하자 내려주신 해결책이 바로 구리 뱀입니다. 뱀에게 물린 이들 중에 기둥 위에 높이 달아놓은 구리 뱀을 쳐다본 이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지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모세의 구리 뱀에 비유해 설명하십니다. 불 뱀에게 물려 죽게 된 이들이 구리로 만들어 높이 달아 놓은 뱀의 형상을 바라보면 목숨을 건졌듯이,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에 들어온 죄악의 상처를 새로운 아담이신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치유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구리 뱀이나 십자가를 바라봄은 그저 시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뱀에 물려 고통으로 자지러질 때 의식을 수습해 구리 뱀을 바라보는 행위나, 녹록하지만은 않은 삶의 여정을 지나면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행위에는 반드시 생명에 대한 간절한 희구와 굳은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믿음만이 십자가를 장식품이 아닌 사랑의 징표로 인식하게 해줍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신과 더욱 친밀해지도록 각자에게 맞춤형 십자가를 허락하셨지요.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라야 주님과의 더 깊은 사랑의 일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 십자가 없이는 사랑도 구원도 요원할 뿐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때론 버겁고 무겁고 힘겨운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을 꼭꼭 다져가며 걷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잔인한 사형 도구인 십자가가 예수님 덕분에 사랑의 징표가 되었듯이, 우리가 저마다 지고 가는 십자가도 주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사랑의 지렛대가 될 겁니다. 비록 나약한 우리지만 주님을 믿고 힘을 다해 십자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와 함께,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반드시 생명을 얻고 사랑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승리하네. 우리 구원하리라.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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