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dariaofs 2021. 11. 24. 06:25

베트남의 순교성인들을 기리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루카 21,13-14)
에수님께서 제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박해 상황을 감추지 않고 설명하십니다. 회당과 감옥에 넘겨지고 끌려갈 것이며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고요.

이때 제자들이 명심할 점은 미리 인간적으로 뭔가를 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증언의 기회에 자기 언어로 섣부르고 장황한 변론을 준비하기보다,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담아 주실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라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즉흥보다 사전 준비에 철저한 성향이라면 다소 긴장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 이 문제는 성향의 문제에서 믿음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8-19)
박해와 죽음 이야기까지 나왔는데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거라 하시니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머리카락"이라는 말을 쓰실 때는, 우리 힘으로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하느님 주권을 의미하고(마태 5,36 참조), 또 이미 아버지께서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두실 만큼 우리가 그분께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임을 가리킬 때입니다.(마태 10,30 참조) 설령 육체적으로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더라도, 주님을 믿음으로써 온전히 구원되리라는 뜻입니다.

제1독서는 어제 등장했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아들 벨사차르 임금 때의 일화입니다.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다니 5,26-28)
다니엘은 적대국에 끌려간 유배자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출중하고 신통력이 있어도 목숨과 안위를 부지하기 위해서는 할 말, 안 할 말은 가려야 하는 처지지요.

하지만 다니엘은 주님의 집 기물로 술을 마시고 피조물을 신으로 찬양하던 임금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풀이해 줍니다. 난데없이 글씨가 나타난 이유는 벨사차르 임금이 인간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면서요.

다니엘은 임금에게 하느님께서 이 나라를 끝내셔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또 임금은 구원받기에 모자란다고 숨김없이 아룁니다. 다니엘은 독서를 듣는 우리가 가슴 졸일지언정,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께서 떠올려 주신 말씀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다니엘 예언자의 태도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 담대함과 용기는 언변과 지혜를 주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의 크기이고 신뢰의 무게겠지요. 이 믿음과 신뢰가 충실함으로 표현되는 것일 테고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 각자가 지닌 믿음의 무게를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당겨 두려워하지 말기를, 그리고 권력이나 재산, 신분 등의 인간적 자원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믿음 덕분에 담대하고 용기 있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주님께서 사람과 사건, 말씀과 자연으로 우리 각자에게 써 보내시는 권고에 늘 깨어 있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