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율법의 본질 망각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심리 기반
신앙생활 무기로 군림하려 들기도
야콥 요르단스의 ‘바리사이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17세기)’.
주님과 늘 대립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 바리사이란 ‘분리된 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속말로 난 너희들과 달라 하는 우월감을 말합니다. 이들은 열심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늘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율법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서 율법이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망각했던 것이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법은 봤지만, 사람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로 보신 반면에, 이들은 사람들을 죄인이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차별 없이 사람들을 만나셨고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을 차별했던 것입니다.
또 이들은 사람들을 포용하기는커녕 정죄하기 바빴습니다. 이런 삶을 산 이유는 무엇인가?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야망을 채우고 우월감을 갖기 위해 애쓰는데, 종교 안에서 이런 야망을 채우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종종 성당에서 진상 짓을 하는 신자들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자기가 영세 받은 지 오래된 것을 내세우는가 하면, 기도를 많이 한다고 내세우는 사람, 활동을 많이 한 것을 자기 치적으로 내세우는 사람 등 겸손함이 없이 신앙생활을 자기 무기로 내세우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이 본당마다 터를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조언이라고 하며 잔소리를 해대고 심지어 자기 추종자들을 모아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안에서의 작은 권력화 현상인데, 대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바리사이 콤플렉스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얼핏 버섯 같아 보입니다만, 독버섯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영적체험이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없는 사람들, 봉사는 하는데 사람들이 보지 않는 그늘진 곳은 찾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면 그 종교는 오염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라사이들과 일전을 벌이셨던 것입니다.
아재 유머입니다. 사막에서 혼자 수행하던 수도자가 죽어서 천당문 쪽으로 가는데, 저 멀리 시장에서 매춘하던 여자가 보였습니다. ‘저런 여자는 천당에서 절대 안 받아줄거야.’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선뜻 천당문을 열어줬습니다.
이번에는 본인 차례. 그런데 서류를 보던 베드로 사도가 고개를 갸웃 하더니 문을 안 열어줬습니다. “그야말로 청정하게 산 나를 왜 안 받아줍니까?”하고 볼멘소리로 항의하자 베드로 사도 왈 “저 여인은 생전에 사람들에게 선행을 많이 해서 천당입소 추천서가 수없이 많이 들어왔는데, 넌 평생 혼자 살아서 추천장이 하나도 없네~”하더랍니다.
천당 들어가는 조건은 얼마나 죄 없이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는가입니다.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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