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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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자가 인간을 유혹해도, 인간은 자의식이 있어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근원적 정체성을 깨닫지 못할 때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그림은 알브레히트 뒤러 작 ‘아담과 하와’. |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은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지닌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의 영적인 특성인 자의식이 교만하게 되거나 자유의지가 남용된다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파괴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노예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창세기 3―4장의 가르침은 바로 인간의 교만과 자유의지의 남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잘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원조인 아담에게 자기 자신을 잘 돌보라고 다음과 같은 당부 말씀을 건네신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여기서 하느님께서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는 말씀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동산 한가운데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금령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자유의지’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에게 선택과 실행의 자유가 부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분별하게 그리고 자의적으로 행사된다면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 즉 자유의지의 남용을 경계하라는 배려의 말씀이기도 하다.
유혹자가 원조들을 죄로 유인하는 방식
하지만 유혹자는 아담과 하와를 다음과 같은 말로 꼬드겨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여기서 유혹자가 원조들을 죄로 유인하는 방식은 그들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지는 않았는데도, 유혹자가 금지와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함으로써 마치 하느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억압하는 분으로 만든다.
즉 유혹자는 첫 번째 사실 왜곡을 시도하여 원조들을 하느님과의 적대관계, 불순종으로 이끈다. 이어서 유혹자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두 번째 사실 왜곡으로 원조들을 유혹한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의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4-5) 요컨대 유혹자는 인간을 하느님의 위치에 서도록, 혹은 선악의 심판자가 되도록 유혹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하도록 이끈다.
교만 부추기고 자유의지 남용케 유혹
아무리 유혹자가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하도록 유혹한다고 해도 아담과 하와가 자기 자신들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자의식, 곧 겸손을 유지했더라면 유혹자의 말대로 꼬임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원조들은 자신의 교만함 때문에 유혹자가 제시한 감언이설에 빠져든다. 창세기는 원조들이 유혹당했을 때, 그들의 인지왜곡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그 결과 원조들은 무언가에 사로잡혀 자신의 행위로써 금령을 어기고 범죄를 완성한다. “여자가 열매를 하나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세 3,6) 이렇게 창세기 3장은 유혹자의 간계로 원조들이 죄를 범하는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유혹자는 인간의 교만을 부추기고 자유의지를 남용케 하여 죄를 범하게 하는 사악한 세력이다. 또한 유혹자는 하느님의 법을 교묘하게 왜곡시켜 인간을 하느님과 대적하게 만든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유혹자의 덫과 위험성에 대해 주지시켜 주고 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 가운데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은 하느님을 우선해서 인간의 욕망을 섬기라는 유혹이다. 이에 예수님께는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단호하게 유혹을 거절하심으로써 인간의
욕구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혹은 유혹자가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유혹이다. 이에 예수님은 그 유혹을 거절하시면서 “주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인간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유혹자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세 번째 유혹은 인간의 교만을 부추기는 유혹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유혹자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느님을 조종하려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항상 경계토록 하셨다.
유혹자가 아무리 인간을 유혹한다고 해도 인간은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깨닫지 못할 때,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릴 때 유혹자의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늘 청원기도를 바치라고 촉구하신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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