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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9.하느님의 구원경륜6- 새 계약으로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다

dariaofs 2022. 2. 4. 00:51

 

▲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이 창궐하여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자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그림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담은 이콘. 출처=가톨릭굿뉴스


인간의 범죄가 초래한 가장 큰 폐해는 하느님과의 관계 파괴이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이 원조들이 범한 죄의 여파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무상으로 선사 받던 존재감(자존감과 자기효능감)과 낙원을 상실하고 무의미와 허무 속에 갇힘으로써 희망이 사라진 암흑을 체험한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추락한다. 더 나아가 통제되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타인이나 외부세계에 폭력을 가하고 허무를 탐닉하거나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등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정체성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자로 추락

하느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혼돈에 빠진 인간을 보시고 그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하신다. 따라서 낙원에서 쫓겨나는 원조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창세 3,21)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람들의 죄악이 점점 더 창궐하여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에 처하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면서”(창세 6,6)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지는 않으시고, 노아를 통해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창세 9,15)는 약속을 하신다. 요컨대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시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에페 3,9; 1코린 2,7), 즉 ‘하느님의 구원경륜’이 펼쳐지게 됨을 뜻한다. 하느님의 구원경륜(Economy of the Salvation)이란 그 말의 어원적인 의미에서처럼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집(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을 복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펼치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다.

 

이것은 어떠한 인간의 저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 속에서 이미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펼쳐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구약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손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을 체험하였고, 하느님의 구원 손길이 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러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죄로 무디어진 마음에서 되돌아서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당시 가장 보잘것없고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다가가신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똑똑히 보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탈출 3,7)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도록”(탈출 3,10) 모세를 중재자로 삼아 그를 파라오에게 파견하여 그의 완고함을 꺾어 놓았다. 마침내 파라오는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활동에 굴복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정체성 되찾아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적인 구원은 이집트의 해방을 통해 성취되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구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은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고”(탈출 6,7)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계약이 시나이 산에서 선포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십계명’ 준수를 약속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다시금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계약의 핵심 내용을 신조로 삼아 늘 마음에 새겼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 새겼던 신조는 다음과 같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 주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4-9)

하느님과의 관계를 마음에 새기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로 완고해져 하느님과의 계약에 점점 불충실해져만 갔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하여 당신과의 계약에 충실하도록 촉구하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계명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로 전락하고 의미 없는 계약으로 변해만 갔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계약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을 준비하셨다. 요컨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화시켜 그들의 가슴에 하느님의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 참다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계약이다.(에제 11,19-20)

 

새 계약의 목표는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과 달리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새 계약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는 외적인 해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적인 구속 상태인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약이다. 이러한 새 계약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파견되심으로 성취되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