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능통하고 소통력 갖춘 청년, 그의 진짜 꿈은 복음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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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공항으로 떠나기 전 손예겸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
손예겸(마리아)씨의 대만 이름은 ‘孫予謙(쑨 유 치엔)’. 그녀는 대만 국적으로 서울대교구 외국어홍보팀에서 5년 반을 일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명동대성당 마당에서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청년대회를 위해 방한한 그녀가 교구 청소년국 직원들에 둘러싸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당시 외국어홍보팀을 기획하고 있었던 차라 우연한 기회로 그녀는 교구 홍보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마치 천사를 보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 마리아의 눈부신 활약은 교황님 방한 때 여실히 드러났다.
교황님의 방한이 정해지자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의 손 마리아씨는 교황님의 외국 순방 책임자인 가스바리 박사와 교황님으로 이어지는 핫라인을 금방 만들어냈다.
수십 번의 전화 통화와 메일 교환으로 의견과 정보를 공유했고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다. 다 밝힐 순 없지만 바티칸 측은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에 관해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2018년 손 마리아씨는 더 큰 꿈을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중국 항저우의 IoT 회사 내 마케팅 부서에서 해외언론 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중국에 온 지 벌써 5개월 정도 지났지만, 지금까지 제가 지냈던 나라들과 많이 달라서 적응하려고 계속 노력 중이에요.(웃음)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전문 통역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고 2005년에 영화 ‘인터프리터’를 보고 통역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멋있다고 생각해서 전문 통역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지요.
▶한국에서 홍보팀을 떠난 후 스페인으로 갔는데 거기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저는 현실에 쉽게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성장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것 같아요. 제2의 고향과 같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강했어요.
MBA를 통해 세계의 다양한 분야의 회사에서 온 유능한 분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토론과 논쟁을 하며 협업하는 소중한 체험을 했어요,
대만 학생들보다 한국 학생들과 먼저 친해졌어요.(웃음) 한국 선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한국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가서 한동안 한국인으로 오해받기도 했어요.(웃음)
▶한국과 처음 인연은?
대만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톨릭 학생 단체인 YCS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된 YCS 동아시아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어요.
행사 후에 청소년국, 라파엘 클리닉, 혜화동 가톨릭청소년회관을 방문하며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어요. 대만은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1% 정도라 신자들이 많지 않아요.
한국의 청년 미사나 모임 등 젊은이들을 위한 행사와 교회의 관심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감동받았고 그래서 한국어도 혼자서 공부하게 되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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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예겸씨 |
▶그리고 서울대교구 홍보국에 들어왔어요?
대학 졸업 후에 취업하라는 분도 많아 망설였지만 제가 체험한 좋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하느님을 위한 봉사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국 서울로 출발했어요.
한국에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신앙도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부르심이라고 느꼈어요. 당시 한국어가 서투른 저를 용감하게(?) 뽑아주신 허 신부님께 감사드려요.
▶그때 언어나 문화 차이로 힘들었던 점은?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했지만, 업무를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어른들께 존댓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저는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의 ‘아메리칸 스타일(웃음)’ 인사나 말투로 본의 아니게 많은 신부님을 놀라게 해드린 적도 있었을 거예요.(웃음)
교구청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혜화동에 가서 정진석 추기경님께 인사드린 적이 있는데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한 언어에 능통해지려면 10년이 걸린다니 지금은 잘 안돼도 괜찮아.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고 말씀하셨죠.
그 당시 언어 때문에 힘들었던 제게 정말 크나큰 위로의 말씀이 되었고, 저에게는 평생 기억할 모습이 되었어요.
▶일하면서 가장 특별하고 보람찼던 체험이 있나요?
역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 때 관련 업무를 하며 교황님을 직접 뵌 것이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교황님 방한 관련 사전 작업부터 시작해 여러 준비 업무를 하고 방한 기간에도 다양한 일로 분주했지만, 교황청의 홍보 담당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국제적인 홍보업무의 과정에도 참여하며 배울 수 있었어요.
▶진로를 고민하는 인생 후배가 있다면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제가 처음으로 진로를 고민했을 때 아버지께서 해 주신 유일한 조언이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어요. 저는 여러 차례의 체험을 통해서 기도의 힘을 확실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이렇게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조언을 해 주고 싶어요. “기도를 많이, 많이 해요!” 당장 정답을 찾을 수는 없어도 고민을 주님께 말씀드리면서 위로와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느님과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체조배를 좋아해요. 성체 앞에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은?
홍보에 관련된 일이 무척 재미있고 성향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홍보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교황청을 위한 홍보 업무도 하고 싶어요.
나중에는 대만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죠. 교회가 좋은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때로는 그에 비해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거든요. 희망이 담긴 메시지, 즉 ‘복음’을 더 많은 사람,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명동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신 후 로마로 떠나시기 전 손 마리아를 따로 불러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하셨다. 마리아는 언젠가 대만 교회를 위해서 다른 나라의 교회를 많이 체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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