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 듯 말 듯 추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도심에서 가장 빨리 봄이 피어나는 자리는 아마 사람들의 옷인 것 같다.
봄이면 산과 들에 요목조목 물드는 분홍과 노랑 빛깔의 옷을 입은 사람이 전철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산을 본 듯, 들을 본 듯 피어나는 봄꽃처럼 환한 얼굴이 된다.
어릴 적 봄이 올 즈음이면 나는 언니와 함께 나물을 뜯으러 들로 나갔다. 아직 마른 풀이 가득한 겨울 밭인데 자세히 보면 사이사이마다 겨울을 지나온 냉이가 제 초록 잎을 펼쳐 뽐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산삼 뿌리처럼 깊게 뿌리 내린 냉이를 캐며 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항상 기뻐했었다. 좋아하실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와 내가 애써서 냉이를 캐도 한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했었다.
또 생채기 내지 않고 캐고 싶었지만 어린 내 손은 끊어뜨리고, 찢고, 심지어는 잎사귀밖에 건지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냉이 무침은 언제나 한 그릇이 된다. 우리의 나물 바구니를 보고 어머니께서 더 캐오신 것이다.
냉이 나물을 드시며 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울 애기들 덕분에 벌써 냉이를 다 먹네. 고맙다.” 그 시절, 냉이 무침은 우리 식구들 얼굴에 봄을 가져다주었다.
봄을 맞이하듯이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하는 분을 나는 안다. 12년 전, 농촌살이에 처음 적응하며 살 때에 만난 한 신부님을 잊을 수 없다.
인근에 갑곶성지가 있었는데 성지 담당 신부님으로 계셨던 신부님께서 미사에 오신 신자분들의 마음을 정말 소중하게 보듬어 주셨기 때문이다.
성지이다 보니 모두 외지에서 오시는 신자분들인데 특별한 표현도 없이, 다만 신자분들 가운데 누가 마음이 아픈지 눈여겨 봐주시는 듯했다.
그리고 정성 어린 미사로서 신자분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모실 수 있도록 안내하시니 미사에 참례하신 신자분들은 주님 현존 앞에 머문 자세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셨다.
신자분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저분은 예수님 같아요.” 신자들의 간절함을 읽어주는 사제의 마음은 누군가가 봄을 맞이하듯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었다.
창밖으로 봄은 오려 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봄을 맞이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곳곳에서 확진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코로나가 가져온 상상할 수 없었던 현실은 본당에 가서 미사를 봉헌할 때에 피부 가까이 더 느낄 수 있다. 신자들은 “아멘”이라는 응답조차 소리 내서 하지 못하고 미사 중에 하는 모든 응답을 해설자가 혼자 대신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신자분들은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서 숨죽여 마스크 안에서 마음으로 “아멘”을 하고 있다. 만 2년 동안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이렇게 적응해가고 있다.
미사에 참례한 신자분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풀이 죽은 어깨가 오늘의 현실을 사는 우리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교회는 “시노달리타스”를 말하며 “저마다 제 길에서, 그리고 함께 걷는 길”을 제시하였다. “시노달리타스”는 구체적으로 ‘듣는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 ‘듣는 교회’의 모습이 실현되려면 마스크 안에서 속울음처럼 울부짖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고, 백성 또한 홍해 바다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위기 속에서도 하느님의 이끄심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오늘의 전쟁과 분쟁, 기후 위기는 우리가 덮어두려 해도 덮을 수 없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혹은 우리 가족의 안위만을 바라는 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정말 봄이 오기를 바란다면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다. 오늘 광야와도 같은 우리 삶 중심에 주님께서 와 계신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예수님 계신 곳이 바로 봄이다. 광야에서.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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