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100년과 함께 울고 웃었던 목자의 길
여러 교구 사목 이끈 최고령 주교
6·25 전쟁 발발 3개월 전 사제수품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에 동반하며
한국가톨릭교회 눈부신 성장 견인
지난 2월 25일 광주가톨릭대학교 주교관에서 윤공희 대주교가 구술 인터뷰에 답하며 웃고 있다.사진 박원희 기자
가톨릭신문이 창간 95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기획을 선보입니다.
가톨릭신문은 지난 2000년 대희년, 새 세기를 시작하며 ‘은퇴 사제의 삶과 신앙’이라는 부제를 붙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기획 연재를 3년여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렸습니다.
한평생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이들, 사목현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각자의 삶터 곳곳에서 원로 사목자로서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삶은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남겼었습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이른바 다시 태어나도 사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곤 하셨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가톨릭신문은 이 기획 연재의 시즌2를 선보입니다. 특별히 이번 기획은 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의 삶과 신앙 속으로 들어가는 장으로 구성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목자의 길, 고단함이 더 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로서의 삶은 은총이고 선물이고 기쁨이라고 말하는 이들.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이라고 말하는 원로 주교들의 목소리를 구술해 담아봅니다. 그들이 풀어내는 삶과 신앙 이야기가, 우리의 영성적 빈곤을 채워주는 또 다른 거름이 되길 기대합니다.

윤공희 대주교님께선 광주대교구장, 수원교구장을 비롯해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맡은 경험도 있습니다. 3개 교구의 교구장 역할을 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924년에 태어나셨으니 내후년이면 만 나이도 세 자리 숫자가 됩니다.
1950년 3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3개월 전 사제품을 받으셨으니, 몇 년째 사제이자 주교로 살고 계시는 건지 머릿속은 산수 계산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구술을 해주실 상황이 되시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한국인 신부님보다 외국인 선교사제들이 더욱 많았던 그 시절, 어떻게 가톨릭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동기로 사제가 되었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윤 대주교님께선 현재 한국교회 최고령 주교님이십니다. 영육간 건강! 이것은 윤 대주교님께서 받으신 큰 선물인 듯 합니다.
구술의 시작은 ‘평양냉면’이었습니다. 평소 가리는 것 없이 잘 잡수시지만, 가끔 고향 음식인 평양냉면이 생각난다며 웃으시는 모습. 그 눈웃음에서 ‘당연히 신부님이 돼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총명한 어린 소년의 미소가 묻어났습니다.
남재성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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