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농사일을 할 때에 돈으로 임금을 계산하기보다 이웃끼리 서로 ‘품앗이’를 해주는 좋은 풍습이 있었다.
그날은 어른들이 집에 안 계시니 집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밭이나 논으로 나와 점심밥을 먹곤 하였다.
그러니 그날 아이들은 어른들이 느끼는 일의 고됨은 모르고, 그저 들에서 맛난 것 먹고 즐거우니 명절처럼 좋기만 하다. 내 기억에 어른들도 우리를 보시며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셨던 것 같다.
품앗이가 있는 날, 막내 언니와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와 평소 부모님께서 하실 집안일들을 했었다. 청소도 하고, 아궁이에 불도 넣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돌아오실 때면 우리는 달려가 어머니의 양쪽 몸뻬 주머니를 뒤졌다. 역시나 품앗이 노동 중에 어머니 몫으로 나온 새참인 ‘보름달 빵’이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들어있었다.
종일토록 몸뻬 주머니에 들어있었어야 했으니, 조금은 눌리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했지만, 보름달은 보름달이었다. 막내 언니와 나는 보름달 빵 하나씩 들고,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었다.
봉지를 뜯었을 때, 그 달콤한 빵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머니께 드리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늘 “엄마는 이런 거 안 좋아해. 울 애기들 많이 먹어.”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이런 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구나.’ 보름달이 반달이 되고, 초승달이 되고, 결국 손에서 없어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정말 행복한 맛이었다.
내가 다 자라서 나이를 헤아려보고, 어머니께서 어린 나를 키우시던 그 나이가 되었던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보름달 빵을 안 좋아하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달콤한 그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다만 당신 입의 달콤함보다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셨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나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비유를 볼 때마다 작은아들이나 큰아들을 통하여 나 자신의 유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하였었다.
항상 아버지의 크시고 자비로우심 안에서, 내 어머니, 아버지의 품처럼 넓은 사랑, 그 자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나에게 이 비유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둘째 아들이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않자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도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자신은 굶어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하늘과 아버지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존재이니 그저 품팔이꾼으로라도 삼아달라고 청할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아무도 배곯지 않는다. 아들이든 품팔이꾼이든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 곳이다. 아버지께서 주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이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군림하고, 자기 몫을 챙기고, 혼자서 폭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배고픔을 염려할 수 있을 때 주인이 될 수 있다. 곧 섬김의 다스림이다.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께서 다스리신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며 깊이 깨닫게 된 것은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부유한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당신이 돌보는 누구라도 배곯지 않도록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여 자신이 누릴 몫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돌볼 몫을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아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큰아들은 방탕한 삶도, 돈을 탕진하지도 않았지만, 작은아들과 같이 제 몫을 계산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은 모든 것인데, 아들들은 보이는 몫만을 챙기려 한다.
잘 섬기고 돌보고 살리고 책임지고 다스리는 몫을 놓쳤다. 오늘 우리 모든 인류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다면, 우리가 정말 올바로 찾아야 할 것이 ‘섬김의 다스림’이 아닐까?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기 획 특 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1. 윤공희 대주교(2) (0) | 2022.04.11 |
---|---|
[특집] 꼰솔라따 첫 평신도 해외선교사 송성호·강은형 부부 (0) | 2022.04.09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1. 윤공희 대주교 (0) | 2022.04.03 |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4) 탤런트 이인혜 데레사 (0) | 2022.04.01 |
작은형제회, 국내 기후위기 상황 다룬 첫 영화 ‘바로, 지금’ 제작 (0) | 2022.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