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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0.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dariaofs 2022. 5. 11. 00:36

금요일마다 남대문과 서울역 파출소 앞에서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누는 수녀님이 있다. 루시아 수녀님. 나는 이 수녀님을 ‘서울역의 성녀’라고 부른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는 20여 년 동안 밥을 나누는 데에서 올법한 ‘찌듦’이 전혀 안 느껴진다. 매주 금요일 6시 20분이면 어김없이 남대문 수입상가 앞에 봉고차 한 대가 와서 준비된 음식을 펼친다.

 

정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정성껏 한 그릇씩 퍼주시면 봉사자들은 노숙인들에게 배달해 드리는 역할을 한다.

250명분의 음식이니 어떤 때는 대충 어림잡아 밥을 푸거나 너무 줄이 길어질 때에는 고명을 올리는 집게를 급하게 일삼아서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루시아 수녀님의 호통이 날아온다. “내가 받고 싶은 것처럼 정성껏 해주세요. 막 하려면 하지 마세요!” 아무도 수녀님의 이 사랑 담긴 호통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의미를 새기고, 결국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뭔가를 받았다는 마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연초에 밥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공동체와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공동체 수녀님들이 먼 데서 사도직을 하더라도 틈 시간을 내서 봉사하겠다고 남대문을 찾아왔다.

 

그리고 다녀가시는 모든 수녀님이 당신들도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입술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가난한 이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한다며 우리는 너무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과는 멀리 떨어진 높은 산 위에서 거룩한(?) 수도생활을, 신앙생활을 만끽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사랑’이 실제로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지난 사순 시기 동안 수녀회 본원에 사시는 수녀님들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개인 용돈을 모으셨다. 연세 드신 수녀님들부터 어린 수녀님들까지 각각 자발적으로 모으셨다고 한다.

 

모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지향이었는데, 그저 돈으로 돕기보다 밥을 해서 한 끼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돈이 되었고, 그것은 금요일 밥 나눔 때에 고깃국 한 번 끓여 드릴 수 있을 정도였다.

 

육개장 250인분을 한다니, 주방 담당을 맡으신 수녀님의 안내로 거동이 불편하신 수녀님들까지 나오셔서 파 다듬고, 고기 찢고, ‘하하 호호’ 하며 음식을 준비하셨다.

 

하나하나의 작은 손길들이 드시는 모든 분의 건강을 위한 기도였다. 그러니 얼마나 맛난 육개장이었겠는가!

나눔은 공동체에 건강한 활기를 가져왔다. 수녀님들이 직접 남대문을 오실 수 없어도 한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며 예수님께 봉사하는 기억이 되도록 하였다.

 

또 음식을 드실 겨를조차 없으신 주님을 거들어 한 끼 음식을 대접해 드릴 수 있었던 체험이 되도록 하였다. 함께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새기며 수녀님들은 주님과 함께 나누는 빵의 기적을 기억하시게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실 때, 그의 본래 이름인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부르신다.

 

그리고는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사랑 자체이시고, 사랑 때문에 돌아가신 분, 그 하느님께서 미약한 한 인간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물으신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왜 나는 이 질문이 그분께 드려야 할 사랑이 아니라,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아느냐는 것으로 다가올까?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린 이는 하느님처럼 사랑한다.

 

곧 하느님의 어린양들을 돌보는 것이 그 사랑을 표현할 길이 된다. 한 작은 일들도 하느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돌보기 위해 한다면, 오늘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것이 된다.

 

그러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을 듣는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에게로 향해있고, 누구를 돌보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할 것이다. 사랑!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