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돋 보 기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2. 사회 공동체의 재건을 위하여①- 이웃 사랑의 실천

dariaofs 2022. 5. 14. 00:43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이 공동체 위기 극복의 길

 

▲ ‘이웃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89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지난 연재에서 오늘날 사회 공동체의 위기의 원인으로 ‘재물이나 잘못된 가치에 대한 우상숭배’, ‘죽음의 문화의 창궐’, 그리고 ‘잔인하고 위험한 무관심한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의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무너져가는 사회 공동체를 재건해 나갈 것인가? 이번 연재부터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해결방안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웃 사랑 실천의 모델 ‘착한 사마리아인’

우선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해결방안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루카복음 10장에서 어느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냐?”라고 되질문 하신다.

 

그가 신명기 6장을 인용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고 응답할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옳게 대답하였다”(루카 10,28)고 맞대응하시며 그를 칭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목적이며,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랑은 우리 존재의 핵심 원리이다. 이 점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언과 같은 말씀으로 사랑이 우리 존재의 핵심임을 밝히신다.

 

“강물은 제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태양은 제게로 빛을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향기를 흩뿌리지 않아요. 타인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태어났어요. 그렇게 하는 게 비록 어렵다 해도 말이지요.” 교황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지 않으면 충만함에 이를 수 없도록 존재적으로 이미 그렇게 태어났음을 자연 세계의 질서에 담긴 사랑의 원리를 통해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는 존재적으로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원조들의 죄를 반복함으로써 그 길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 모델을 제시하신다. 바로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 회칙 56항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성경 구절 전체를(루카 10,25-37 참조) 그대로 인용하여 그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교황 회칙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 의미는 아마도 인용된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라는 초대이며, 더 나아가 우리 내면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리라.

 

이 비유는 어느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고 ‘형제애의 실천 범위’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루카 10,36)라는 질문으로 답변하신다.

 

이웃 사랑의 실천 범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같은 민족 구성원이나 적대감이 없는 사람에게만 이웃 사랑을 국한시키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임을 피력하신 것이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임을 제시하신 것이다.

상대방의 필요에 응답하는 이웃 사랑

상대방의 필요에 응답하는 이웃 사랑을 할 때, 예기치 않은 기적이 일어난다.

 

사랑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이웃을 향하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서로를 고립시키고 분열시켰던 사슬이 끊어지고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유대감을 만들고 존재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모든 형제들」 87항).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에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더해주고 견고하게 해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제자들이 하느님께 소속되고 제자들 간의 유대의 끈이 형성되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우리 역시 사랑의 이중 계명 실천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때 사람들 사이에 놓인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가 유대감으로 결속되며, 이로써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재건해 갈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다. 단 이웃사랑이 서로를 연결시키는 유대감의 다리가 되고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거래적인 사랑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독과 우울증의 문제는 상대방의 필요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 형제애의 유대 안에서 구원과 평화를 체험한 것은 각자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놓는 자선과 선행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방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상생의 집이 되어주어야 한다.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고 유대감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주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