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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0. 사회 공동체의 위기 ③ 죽음의 문화

dariaofs 2022. 5. 2. 00:43

인간 생명·존엄성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 창궐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 회칙에서 오늘날 우리 문화 안에 은밀하게 파고든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주목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한 또 다른 배경에는 생명문화를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 창궐에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 회칙에서 우리는 지금 “생명에 반하는 음모”(12항)와 대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교황은 공의회 문헌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셨다.

 

“온갖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 :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고문, 심리적 억압과 같이 인간의 온전함에 폭력을 자행하는 모든 행위 :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 :

 

노동자들의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단순한 도구로 취급당하는 굴욕적인 노동조건, 생명을 위협하는 이러한 음모들은 인간의 문명을 부패시키는 것이다.”(「사목헌장」 27항)

문명화된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원조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리고 카인의 형제 살인에서 비롯된 다양한 폭력과 억압과 수탈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생명 자체를 거스르고, 인간의 온전함에 폭력을 가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고, 인격적인 대우가 아닌 수단으로 대우받는 일들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이러한 불의와 폭행은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일 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인간 본성을 파괴한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

특히 교황은 이 회칙에서 오늘날 우리 문화 안에 은밀하게 파고든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전망과 더불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생명의 복음」 4항)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맹목적인 숭배나 신뢰를 품고 있기에 윤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선을 가장한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쉽사리 감지하지 못한다.

오늘날 자행되고 있는 안락사, 낙태, 보조생식술, 유전자 조작 등은 마치 인간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을 가장하여 인간 생명을 위협하고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들이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들 교수도 그의 저서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오늘날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발전은 명암이 상존함을 밝히고 있다. 과학발전의 긍정적인 전망은 인간을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의 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전망은 우리의 유전적 특성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재단하려는 ‘오만함’으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과학의 발전이 오히려 생명파괴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샌들 교수는 우리가 과학기술을 통해 ‘완벽해지려는 욕망’에 도취되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욕망에 도취되는 것은 우리를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생명과 재능을 ‘주어진 선물’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생명을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교만함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완벽해지려는 욕망’에 도취될 때, 우리 영혼은 역설적으로 점점 더 빈곤해지고 피폐해진다.

예를 들자면, 완벽한 외모를 갖기 위해 성형을 하게 될 때,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울 수 없어서 성형 중독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강화 약물들을 사용한다면, 계속 욕구 불만족의 수렁에 빠져 그것을 남용하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유전자 합성을 통한 ‘디자인 베이비’를 꿈꾸게 된다면, 열등한 사람들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우생학적인 사고가 팽배해져 이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거나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하여 멸시하는 반생명적인 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렇게 과학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함’을 향한 인간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는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뱀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선악과의 열매를 따는 비극적인 결과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자유라는 미명하에 반생명적 행위 용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극히 우려했던 또 다른 것은 ‘죽음의 문화’가 은밀하게 우리 정신에 파고들 뿐 아니라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결합된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들이 광범위한 여론을 등에 업고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사회와 국가 안에서 정당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미나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마저도 자국 헌법의 기본원칙을 벗어나면서까지 윤리를 따르지 않는 반생명적 행위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그것을 입법화하려는 모습은 극히 우려스럽다.

 

“일단 범죄라고 만장일치로 내려진 결정과 상식적인 도덕 판단에 의해 거부된 것들이 사회적으로 점차 용인되고 있음”(「생명의 복음」 4항)은 인간 생명의 기본 가치를 흔들리게 할 뿐 아니라 양심 자체가 어두워져 선과 악을 구별하는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게 할 것이다.

 

또한, 생명의 기본가치가 흔들리고 선악의 구별이 어려워진다면,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후퇴할 것이며, 연약한 생명이 그 피해를 입게 된다.

 

이렇게 죽음의 문화가 창궐한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생명의 가치를 식별하고 선택하는 깨어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