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부르던 이름 ‘예수 마리아’
쉼 없는 사목 순방으로 몸이 약해진데다
장티푸스까지 겹쳐 결국 쓰러진 최양업
푸르티에 신부에게 병자 성사 받고 선종
유해는 배론 신학교 뒷산 중턱에 안장돼
“토마스 신부가 지난 6월 15일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사목 방문이 끝나갈 무렵 대목구장 주교님께 가는 도중에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인 푸르티에 신부가 종부성사와 임종 전대사를 줄 수 있도록 제 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의식이 거의 없었으나 애정 어린 신심으로 예수와 마리아의 두 이름만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1861년 8월 4일 페롱 신부가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 길 위에서 하느님 곁으로 간 최양업
경신박해의 기세가 잠잠해지고, 곧 사목순방을 시작한 최양업. 열심했던 신자들이 박해의 위협에 못 이겨 신앙을 놓을까 우려했던 최양업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사목순방에 나섰다.
페롱 신부는 1861년 7월 26일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마스 신부는 낮에는 80리 내지 100리를 걸었으며 밤에는 고해를 듣고
또 날이 새기 전에 다른 교우촌으로 떠나야 했으므로 그가 한 달 동안 취할 수 있었던 휴식은 나흘 밤을 넘지 못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베르뇌 주교에게 순방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길. 오랫동안 과로로 몸이 약해진 데다 장티푸스가 겹친 최양업은 결국 쓰러지고 만다.
베르뇌 주교가 “우리 중에 가장 튼튼한 사람은 최 토마스 신부”(1859년 11월 6일 신학교 지도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할 만큼 건강에 문제가 없었던 최양업은 경신박해를 겪으며 스트레스와 과로로 체력이 급격히 약해진 것이다.
최양업이 위험하다는 전갈을 받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배론의 성 요셉 신학교 교장 푸르티에 신부는 최양업의 마지막 순간을 이같이 전했다.
“그는 아주 열성적으로 예수, 마리아 두 이름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므로 아직 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말마디는 전혀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두 이름을 죽기 직전의 고통 속에서도 그처럼 분명하게 발음하는 것을 보며 각별한 은총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1861년 10월 20일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편지)
1861년 6월 15일, 갓 마흔을 넘긴 최양업은 신자들을 위해 쉼 없이 걸었던 걸음을 멈추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간다.
이후 그의 시신은 선종 장소에 가매장됐다가 같은 해 11월초 배론 신학교 뒤에 있는 언덕으로 옮겨져 베르뇌 주교의 장엄 예절 아래 안장됐다. 베르뇌 주교는 생전의 최양업 신부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의 유일한 현지인 사제인 최 토마스 신부는 굳건한 신심과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열의, 그리고 대단히 값진 훌륭한 분별력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의 서한에는 최양업의 선종 장소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서한이 분실되거나 탈취됐을 경우 선종 장소가 노출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유력하게 지목된 곳은 진천과 문경이다. 정규량(레오) 신부가 1929년 최경신(바르나바·당시 82세)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 문서에 따르면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은 “1929년 증언 당시 최경신씨는 용소막성당 아래 살고 있었는데, 그의 나이로 미뤄보아 증언들은 이장 당시의 목격 증인들에게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양업에게 병자성사를 준 푸르티에 신부가 “그가 누워 있었던 집은 저의 거처에서 17리외(lieue) 내지 18리외 떨어져 있었다”라고 내용을 토대로
문경 선종설의 근거가 되는 것은 최양업 후손들의 증언이다. 최양업의 셋째 동생인 최우정(바실리오)의 맏아들 최상종(빈첸시오)은
이를 토대로 안동교회사연구소장 신대원(요셉) 신부는 “최 신부는 문경 어느 주막집에서 병을 얻었고, 그곳에서 문경 읍내에 있는 평창이씨 약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선종했다고 추정된다”고 전했다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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