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고 고된 산길에서 만난 선조들의 신앙 열정
포졸들 눈 피해 은신처로 삼았던 죽림굴
경신·병인박해로 신자들 체포되며 폐쇄
1986년 대나무와 풀로 덮인 죽림굴 발견
석굴 안에 있던 유물은 언양성당서 보관
최양업의 사목여정 담은 순례길도 조성
“저는 박해의 폭풍을 피해 조선의 맨 구석 한 모퉁이에 갇혀서 교우들과 아무런 연락도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달 주교님과 다른 선교사 신부님들과도 소식이 끊겨, 그분들이 아직 살아계신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이 편지도 중국까지 전달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1860년 9월 3일 죽림에서 보낸 서한)
■ 간월산에서 부친 최양업의 마지막 편지
경신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산속 공소에 숨어든 최양업은 그곳에서 마지막 편지를 쓴다.
‘죽림’이라 알려진 마지막 편지의 작성지는 경남 울주군 상북면 억새벌길, 간월산 허리춤에 자리한 죽림굴(대재공소)로 추정된다.
이 편지에서 최양업은 열심한 신자였던 동정녀 아가타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녀는 죽림굴에서 3개월간 머물며 최양업 신부를 도왔다고 전해진다.
숱한 위험을 겪다 최양업과 만난 아가타는 고생을 많이 한 나머지 24살,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둔다.
최양업과 교우촌 신자들은 아가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며 임종경을 읽었고 최양업은 아가타의 시신에 솔가지를 덮고 묘비인 패장을 세워줬다고 전해진다.
며칠 후 신자들은 아가타의 시신을 간월골로 옮겨와 공소 뒷산에 매장했다. 이를 토대로 교회사학자들은 최양업이 마지막 서한을 쓴 죽림이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죽림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영남 알프스 자락을 따라 걸으며 신앙선조들의 흔적을 찾다
간월산 속에 있는 죽림굴(대재공소)은 간월산 일대 신자들이 공동체를 일궜던 간월공소에서 왕방재라는 고개를 넘어 왕래한 박해 시대의 피난처다.
석굴 안에 있는 이 공소는 대나무로 덮여 있어서 ‘죽림굴’이라고 불렸다. 폭 7m, 높이 1.2m 규모지만 입구가 낮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은신하기 좋은 장소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 온 신자들과 간월공소의 신자들이 보다 안전한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했고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었던 덕분에 재 넘어 간월 쪽에서 포졸들의 움직임이 보이면 100여 명의 신자들은 한꺼번에 넓은 굴속에 숨어 위기를 모면했다고 전해진다.
1868년 9월 14일 울산 병영 장대에서 순교한 대재공소 회장 이양등(베드로)와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카)도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최양업은 1840년부터 1860년 사이에 이 지역에서 사목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이 지방에서 신자 20여 명이 체포됐고, 뒤이은 병인박해(1866년)의 여파로 1868년에 신자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이 넘었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대재공소는 폐쇄됐다.
죽림굴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다.
1986년 10월 29일, 당시 언양본당 주임 김영곤(시몬) 신부와 신자 11명이 죽림굴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죽림굴을 찾아 나선 신자 4명은 11월 9일, 대나무와 풀로 뒤덮인 굴을 발견했다.
당시 굴 안에서 발견된 구유조각과 나무지팡이 등은 언양성당 신앙유물 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1996년 2월에는 죽림굴 주변을 정리하면서 안내석을 새로 세우고 입구와 계단을 만들었다.
최양업의 사목여정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은 ‘울주 천주교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순례객들을 맞고 있다.
울산 인보성당에서 시작해 하선필공소, 상선필공소, 탑곡공소에 이르는 8.1㎞의 1코스에서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떠나온 교우촌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언양성당에서는 언양 시가지를 지나 길천·순정·살티공소, 살티신앙사적지에 이르는 13.1㎞ 구간의 2코스를 시작할 수 있다.
아울러 죽림굴을 순례하기 위해서는 상북면 이천리(배냇골)에서 시작해 영남 알프스 자락 3.2㎞를 걷는 3코스를 이용하면 된다.
국립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에서 시작하면 2시간가량 올라 만나게 되는 죽림굴. 가파른 돌길과 산기슭, 오솔길을 따라 고된 길을 걷노라면 신앙을 위해 온힘을 다해 걸었던 최양업과 신앙선조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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