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을 ‘가설로’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로’ 믿을 것인가
과학 이론에 따라 옳다는 ‘실재론’
이론은 가설일 뿐이라는 ‘반실재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전통적인 역사적 해석은 “한 명의 과학자에 대한 교회의 몰이해로 인한 과도한 권력 행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고 탐구하는 새로운 철학 분과인 과학철학이 발전해 가면서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해석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은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날에 와서는 반실재론적인 성향의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관점에 따라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편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과학적 실재론은–세부적으로는 여러 버전들이 존재하지만–간단하게 말하면, “과학은 우리들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로 존재하는 사실/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가장 단순한 실재론을 흔히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 이론은 관측된 사실을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등 경험적 유효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론이 말하는 모든 내용이 관측 불가능한 부분까지도 글자 그대로 정말로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에 대한 논증들은 특히 전자, 쿼크, 초끈과 같이 직접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실체들에 대해 과학 이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발생합니다.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은 이러한 실체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바로 이러한 (소박한) 실재론의 입장을 옹호한 대표적인 과학자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종교 재판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태양 중심적인 모델의 ‘물리적 실재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그가 결코 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과학자들은 갈릴레오가 그러했듯 과학적 실재론의 옹호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실재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반실재론자들 역시 존재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반실재론 혹은 도구주의에 따르면,–반실재론도 실재론처럼 세부적으로는 여러 버전들이 존재합니다–“과학의 목표 자체는 진리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험/관찰의 결과들을 경험적으로 적절하게 기술함으로써 현 단계에서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과학적 이론화의 진짜 목표는 진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적절성’에 있다는 것이죠. 즉, 과학 이론은 진리/진실을 의도하지 않는 허구적인 모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실재론자들은 과학적 기술들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과학을 관찰 가능한 현상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을 돕는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로서 여깁니다.
반실재론에 따르면 과학의 임무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추구하는 것으로 그 범위가 좁혀지고, 관측 불가능한 것에 관한 이론은 영원한 가설이거나 편리한 사고의 도구로 격하되고 맙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시대에 이미 이러한 반실재론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공전에 관하여」가 처음 출판될 때 그 책에 서문을 쓴 루터파 목사인 안드레아스 오지안더(Andreas Osiander)는 그 이론이 물리적 기술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계산을 위한 도구’로서 고안되었다고 밝혔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레오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이들인 벨라르미노 추기경과 우르바노 8세 교황 역시 반실재론적인 접근을 취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둘 다 별과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하느님이 하늘의 구조를 만들 때 실제로 선택한 방식이 어떤 것인지는 당시로서는 밝혀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가설로서’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지만 그 모델을 ‘사실로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차이는 실재의 관찰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반실재론자들은 우리의 관찰 능력이 과학 지식을 한정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실재론자들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대다수 실험과학자들은 실재론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중입니다.
자신들의 실험 측정을 통해 나온 모든 데이터들이 바로 독립된 실재의 반영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반면 20세기 이후, 특히 양자물리학의 출현 이후 많은 이론물리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반실재론을 주장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반실재론적 이론물리학자는 바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2018)으로, 그는 자신의 반실재론적 견해를 여러 차례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물리 이론들이 우리가 구성해 낸 수학적 모형일 뿐이며, 그것들이 실재에 대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관측을 예측하는 것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믿는 실증주의자이다.”
그래서 20세기 대표적 실재론자인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는 반실재론을 지지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수적 우위에 관해 한탄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 절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남겨진 이 모든 철학적인 논쟁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갈릴레오가 만든 전통에 충실하게, 갈릴레오가 과학을 진리 탐구라고 이해했던 대로 진리 탐구에 전념했다. 그들은 아주 최근까지 그렇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이제는 과거의 역사이다. 오늘날에는 … 철학적인 이슈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 없이도, 더 이상의 새로운 주장을 만들지 않고도, ‘도구주의적 관점’은 받아들여지는 교리가 되었다.
이제 (아인슈타인(Einstein)과 슈뢰딩거(Schrodinger)는 그렇지 않지만) 물리학의 지도자급 이론가들 대다수에 의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것은 물리학 이론의 ‘공식적인 관점’으로 불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현재의 물리학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서로 상반된 두 진영 간의 이러한 긴장은 여전히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들, 특히 실험과학자들과 이론과학자들이 대등하게 분포되어있는 물리학의 여러 분과들 안에서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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