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축제’에도 기도하며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최인호(베드로, 崔仁浩, 1945~2013)는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자신의 문학관을 담아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종교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순교도 필요하고, 희생도 필요하다고 했다.
문학은 인간의 존재를 새롭게 자각시키는 또 다른 종교와 같은데, 다만 문학이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천국과 지옥을 내세에서 구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서 찾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최인호는 문학을 종교로 보았다. 그 후로 조선 상인의 삶을 그린 「상도」가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신라 장군 장보고의 일대기를 다룬 「해신」이 K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또 「사랑의 기쁨」으로 가톨릭문학상을, 「몽유도원도」로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다. 가톨릭과 불교에서 주는 문학상을 모두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세례명 이어 받아
최인호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에 입교했다. 세례명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좋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돌아가기 직전에 대세(代洗)를 받을 때 세례명으로 삼았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였던 아버지는 동기생이던 사도법관 김홍섭(바오로) 판사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대세를 받았다. 최인호는 그러한 아버지의 세례명을 이어받아 ‘베드로’가 되었다.
최인호가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말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때 많은 작가가 최인호의 문학은 끝났다고 수군댔다.
한 문학평론가가 최인호를 보자고 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평론가는 작가는 자유로워야 하는데 종교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으니 큰일이라고 했다. 최인호는 사람들의 이러한 걱정을 떨쳐버리고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고 나서 무엇이 문학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 때문에 소설을 쓸 수 없는 그런 작가가 되어버린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슬프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지요.”
최인호는 가톨릭 신앙인으로 생활하면서도 다른 종교와도 각별했다.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나 자신을 부르고 싶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졌다.
최인호는 한때 스님이 되고 싶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중앙일보에 ‘길 없는 길’이란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다. 경허 스님의 행장(行狀)을 소설화한 것이다.
그 무렵 최인호는 정말 스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덕사 한 스님에게 승복을 빌려 입고는 밤늦도록 압구정동의 번화가를 누비고 다녔다. 밀짚모자를 쓰고 승복을 입고 화려한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걸으니 자신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쳤다. 출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출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최인호는 법정 스님과 친분이 깊었다.
스님과 산방(山房) 대담을 나누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불교관을 담은 수필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를 쓰기도 했다.
침샘암 투병과 기도
어느 날, 목 부위에 덩어리가 만져졌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침샘암으로 판명 났다. 침샘암 때문에 최인호는 그의 표현대로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다.
병으로 앓고, 병으로 절망하고, 병으로 기도하고, 병으로 희망했다. 그는 그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했다. 침샘에 있던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 전신 항암 요법이 시작되었다.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5㎏이나 빠졌다.
항암제는 독했다. 구토가 나고, 머리가 빠지고, 손발이 저렸다. 손톱과 살 사이에 염증이 생기면서 진물이 흘렀다. 목구멍으로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다. 항암 치료가 너무나 괴로워 의사에게 치료받지 않겠다고 했다.
투병 중에 갑자기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수님도 저렇게 고통을 호소하는데,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 완전히 저를 맡기겠사오니 제가 그렇게 되도록 은총 내려주소서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이 기도가 그 유명한 ‘엿가락 기도’이다. 최인호는 서울 서초동성당을 다녔다. 그는 와병 중에도 매주 미사에 참여했고 성체조배를 했다. 어느 날 늦은 오후였다.
어느 신자가 성당 감실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마침 이를 본 신부가 그 신자가 기도를 마치기를 기다린 후에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신부에게 말했다. “성체가 너무나 고픕니다.” 그 신자가 최인호였다.
눈물로 쓴 작품
무려 다섯 해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인호는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면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쓰기는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인데 지칠 대로 지친 육체와 정신으로는 불가능했다. 최인호는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에 슬펐다.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탁자 위에 있는 성모님께 떼를 써가며 막무가내식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탁자 위에서 하얀 얼룩무늬를 발견했다. 자신이 흘린 눈물 자국이었다. 진한 눈물 자국이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다. 글은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기에, 빠진 손톱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고무 골무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구역질이 올라올 때마다 차가운 얼음 조각을 씹으며 글을 썼다. 하루에 서른 매씩 써 내려갔다. 그리하여 두 달 만에 완성된 작품이 무려 원고지 1200매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였다.
원고지 위에 못박고 스러지게
최인호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주님,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박·고·스·러·지·게·해·주·소·서.” 네 번째 항암 치료를 끝으로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목에 패인 상처에 연고만 발랐다.
가래는 점점 끓어올랐고 이를 뱉을 기운조차 없었다. 힘을 다해 억지로 가래를 뱉으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침샘암은 침이 마르고 가래가 기관지에 딱 붙어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병이었다. 다시 입원했다. 그리고 정진석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그날 오후, 딸이 물었다. “아빠 주님 오셨어?” 다음 날 그리고 다다음 날까지 똑같이 물었다. 최인호가 대답했다. “주님이 오셨다. 이제 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최인호는 하느님 품에 안겼다. 최인호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절벽 끝으로 와라’라는 시를 좋아했다.
‘그가 말했다/ 절벽 끝으로 와라/ 그들이 대답했다/ 무섭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절벽 끝으로 와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았다’
참고자료 : ▲최인호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샘터. 1995 ▲최인호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여백. 1999 ▲최인호 「꽃밭」 열림원. 2007 ▲최인호 「인연」 랜덤하우스. 2010 ▲최인호 「눈물」 여백. 2013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여백. 2015 ▲여성조선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의 삶’(2013년 11월호) ▲백형찬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태학사. 2015 ▲만물상 조선일보(2013.9.27.) ▲프리미엄 조선 김윤덕 기자의 Back to The줌마(2014.1.7) ▲엘레강스(별책부록) 1976년 9월호 ▲네이버 지식백과 - 장석주 ‘나무이야기’(20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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