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제주교구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의 축복식이 있었다. 교구장 문창우 주교님 주례로 진행된 축복식에는 많은 신부님과 신자들이 함께해주었다.
제주의 해녀들이 잠수 뒤에 해면으로 올라와 첫 숨을 쉬면서 내는 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혼숨’은 하느님의 숨결, 큰 숨결을 의미한다.
무한경쟁 속 하루하루 전쟁과 같은 삶을 살면서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청년들이 잠시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 숨결을 찾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지난해 가을, 이시돌 피정에서 한 청년과의 만남이 혼숨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신앙은 있었지만, 죽음 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이에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세속의 즐거움으로 채우려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이 자매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데요.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아파하면 하느님께서는 더 아파하시고, 슬퍼하면 더 슬퍼하십니다.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실 거예요. 왜냐하면 제게도 그러셨거든요. 지금 제가 웃고 있지만, 저라고 아픔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언제나 믿는 건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함께하신다는 거죠.”
그날 밤하늘에는 별이 참 많이 떴다. 그 별을 보며 기뻐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옆에 있어 주고, 들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구나. 때론 형으로, 오빠로, 친구로, 삼촌으로 내가 함께 해주면서 큰 힘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
사실 나는 청소년ㆍ청년에 관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눈으로,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청소년ㆍ청년 사목을 하는 어느 신부님이 “어떻게 하면 사목을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자 교구장님께서 답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공부를 많이 한 경험과 전문가라는 위치가 때로는 마음과 마음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이것이 이론으로만 청소년과 청년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현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나.” 나 또한 이 말씀을 듣고는 ‘이것이야말로 정답이구나!’ 하며 쾌재를 부르며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혼숨은 옛 공소를 리모델링해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풀을 깎기도 하고, 서투른 실력이지만 목공일과 무거운 돌을 바닥에 깔기도 했다.
흘리는 땀방울에 기도와 간절함을 보태며 작업에 매진했다. 앞으로 함께 머물 청년들이 큰 숨을 쉴 수 있는 귀한 곳이 되기를 기도하며 봉헌한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아 더 열심히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운이 혼숨에 머무는 청년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시돌에서의 피정 진행 일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오로지 혼숨에 집중하고자 새롭고 두려운 길을 걸으려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의 은총이 많은 청년을 통해 혼숨에도 머물기를 희망한다.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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