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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 치유 희망 전하는 ‘성모꽃마을’

dariaofs 2024. 1. 3. 00:19

지옥 같던 암환자의 삶이 ‘은총’임을 깨닫게 해주는 신비로운 마을

5박6일 동안 의학 교육하고
매일 미사하며 영적 치유까지
긍정적으로 이겨낼 힘 얻고
하느님께서 함께하심 알게 돼

 

오랜만에 만난 교육생들이 예수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성모꽃마을 교육생들은 매년 한두 차례 쉼터에 머물며 영적 치료를 받는다.


“대장암 4기입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의사에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모든 시간은 고통과 두려움이 됐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매일 매일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암을 죽이려 시작한 항암치료는 몸과 마음을 혹사시켰고 살 수 있다는 생각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 항암치료가 끝났지만 재발할 수도, 전이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삶에 대한 희망을 또 한 번 앗아갔다.

삶의 빛이 모두 사라진 순간 만난 성모꽃마을. 청주시 원통리의 작은 마을에 모인 암환자들은 쉴 새 없이 웃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천국. ‘신비롭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온열요법 치료를 받는 교육생들.성모꽃마을 제공



 

성모꽃마을 교육생 숙소.성모꽃마을 제공


■ 하느님 자녀의 존엄한 죽음 위해 문 열다

25년 전, 시골의 작은 본당에서 사목했던 한 사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할머니가 몸이 아파 성당에 나오지 못하자 빈첸시오회 회원들과 집을 찾았다.

 

자궁경부암 말기였던 할머니는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집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나 있는 자식은 집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고, 말기암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오물과 피로 난장판인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하루라도 따뜻하게 지내고 싶다”던 할머니는 신자들이 사다준 솜이불을 덮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고통 속에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사제에게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을 각인시켰다. 그 뒤로 호스피스 공부를 시작했고, 암환자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그들 곁에 함께했다.

성모꽃마을 원장 박창환(가밀로) 신부 이야기다. 인간의 죽음은 하느님 곁으로 가는 거룩한 여정이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에 집중한 나머지 하느님의 존재를 잊어버린 인간에게 죽음은 불행과 괴로움일 뿐이다.

 

더욱이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생각한 순간, 전에는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을 것들이 지옥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박 신부는 “성모꽃마을은 육체적인 치유와 함께 암환자들의 영적인 치유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암환자의 치유를 위해 박 신부가 의학공부를 한 시간은 35년, 성모꽃마을에 다녀간 교육생은 1만5000여 명에 이른다.

 

수많은 암환자들을 만나면서 박 신부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암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나 기준, 원칙을 모른 채 투병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의학적 정보뿐 아니라 신학과 철학을 토대로 암환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매월 셋째 주에 치유교육을 시작했다.

 

성모꽃마을에서는 5박6일 동안 암 투병 방법과 재발을 막기 위한 의학적·과학적인 방법을 알려주며 암에 걸린 원인을 찾고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친다.

박 신부는 “암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법이 반드시 의학적인 기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음이 건강해야 육체도 그렇게 변한다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만드신 원리에서 치유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모꽃마을에서 매일 봉헌되는 미사는 암환자들의 영적 치유를 완성시킨다.

 

암환자로 입소해 ‘암프로빌리지’ 유튜브 제작 봉사를 하고 있는 이영주(아나스타시아·53)씨는 “신부님은 매일 강론을 통해 삶의 기쁨을 알려주시며 암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주셨다”며

 

“주님의 자녀인 우리는 늘 사랑받고 있으며 오늘 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씀은 암투병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셨고, 세례를 받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노래 공연을 즐기는 교육생들.성모꽃마을 제공



 

운동경기를 하고 있는 교육생들.성모꽃마을 제공



암환자로 입소해 육체적, 영적 치유를 받은 교육생들이 성모꽃마을을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 하느님 되찾은 사람들이 만난 천국

성모꽃마을에는 호스피스 센터와 치유센터가 있다. 치유센터는 5박6일간 진행되는 치유교육과 교육을 수료한 후 이용할 수 있는 쉼터(5박6일) 및 머뭄터(1개월 이상)로 구성된다.

 

쉼터와 머뭄터에서는 기쁨 치료를 비롯해 치료기기와 건강보조식품 등을 제공해 면역력을 높일 수 있게 돕는다.

12월 22일 성모꽃마을의 점심시간, 쉼터와 머뭄터에 머무는 6~7년차인 선배들이 며칠 전 입소한 새내기와 함께 식사를 한다.

“위암 몇 기예요? 위는 얼마나 잘라냈어요? 나는 유방암 수술하고 두 가슴이 없어서 얼마나 몸이 가벼워졌는지 몰라요, 하하.”

갓 항암치료를 끝내고 야윈 모습의 교육생에게 쉼터 선배는 편하게 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병원에서라면 ‘암’이라는 단어만으로 공기가 무거웠을 상황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처럼 가볍게 암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음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호진(프란치스코·37)씨는 “암을 경험하신 분들이 먼저 편하게 이야기해 주시니 나도 병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암을 통해 얻은 게 더 많았다거나 암이 가져다준 축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암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졌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암뿐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모든 문제들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좋지 않은 일이 내게만 생긴 것 같은 억울함은 삶을 지옥과 같이 느껴지게 만든다.

 

성모꽃마을에 온 이들도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함, 암과 함께 살아가는 공포감으로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 만에 이들은 삶이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그들을 행복한 삶으로 가닿게 했다. 그들은 성모꽃마을을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말했다.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 비결은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육체적인 것에 몰입돼 잊었던 영성을 성모꽃마을에서 찾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하느님의 존재는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대장암을 극복하고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선주(데레사·54)씨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곳에 와서야 하느님과 진정으로 연결됐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경험하며 삶에 대한 감사함이 커졌다”고 말했다.

※후원 및 문의: 농협 355-0020-0389-43 성모꽃마을, 043-211-2113


치유교육을 하고 있는 박창환 원장 신부.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