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있는 대기 선수를 ‘식스 멤버’라고 한다. 다섯 명의 출전 선수를 제외한, 언젠가는 경기에서 뛸 여섯 번째 선수라는 의미다.
‘식스 멤버’가 없다면, 주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경기 도중 다치거나 체력이 소진돼도 대체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독·코치도 다양한 작전을 구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미니코 수도회 역사와는 달리 우리 공동체는 한국에 진출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회원 수가 많지 않고, 다양한 사도직을 구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성직자·수도자가 공동체 사도직에서 편한 일만 골라 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지만, 적어도 고정된 사도직에서 개인의 탈렌트와 성향을 맞춰야 하는 고충은 덜한 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나는 다양한 사목 환경 속에서 가끔 ‘바쁜 것’과 ‘힘든 것’의 차이를 인식해야 할 때가 있다.
13년 전 신자가 아닌 보호자가 시설에 머물던 할머니 한 분을 ‘집에서 돌보겠다’고 모셔간 일이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할머니 이웃이라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수녀님에게 알려왔다.
시설에서 나온 후 건강이 약해지자 보호자 발길이 뜸해졌고, 결국 연락조차 끊겨 외롭게 돌아가셨다는 바였다. 이웃도 신자는 아니지만, 딱한 마음에 할머니가 시설에 머물렀다는 기억을 살려 어렵게 수녀님을 찾은 것이었다.
어르신이 교적을 둔 본당이 명확하지 않아 수녀님은 내게 연락해 “내일 이른 아침 장지로 떠나야 하니 지금 장례 미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내내 긴 동선의 일정을 마치고 막 잠을 청할 무렵이었다. 마지막에 외로이 떠난 분이신데, 장례 미사를 집전해야 할 사제가 복잡한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마음먹고 서둘러 갔다.
어렵게 마련된 빈소는 휑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수녀님과 이웃, 이렇게 셋이 자정 무렵에 미사를 봉헌했다. 이틀에 걸친, 어르신을 위한 마지막 미사였다. 힘든 게 아니라 잠시 바빴던, ‘땜빵’이 아니라 ‘식스 멤버’가 출전한 사도직이었다고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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