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나눔 –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는 의미/ 교회의 일치를 표현
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평화의 인사로 조용하고, 벅찬 기쁨이 충만한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이 때 사제는 축성된 빵을 들어 성반에서 쪼개어 그 작은 조각을 성작 안에 넣으며 조용히 기도하는데, 빵을 쪼개는 이유는 유다 풍습 가운데 빵을 나눔을 통해 공동체 안에 사랑과 일치를 다졌던 것에서 유래한다.
사도시대에서는 사제단이 주교를 중심으로 빵을 나누는데, 빵의 나눔을 통해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예식은 하나인 생명의 빵,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영성체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미사경본 총지침 83항).
또한 빵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영혼과 육신이 갈라지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37).
일부 사제가 성찬례가 시작되는 부분, 즉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쪼개어······.”하는 부분에서 빵을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자의적으로 미사 통상문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즉 빵을 나누는 행위는 단 한번 미사 중에 이루어진다.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눈 후,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 안에 넣으며 기도한다. 이 때 작은 성체 조각을 성작에 넣는 것은 신학적인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관습적으로 교회 내에서의 일치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빵 나눔을 하는 동안에 회중은 “하느님의 어린양”의 기도문을 외우게 되는데, 7세기경 동방교회의 예식에서 도입을 했다. 성가대가 노래로 할 수도 있는데,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축성된 빵을 쪼개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 반복해서 할 수 있지만(사제가 성체를 쪼개는 시간이 길어지는 특별한 경우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절을 계속해서 노래하거나 외울 수 있다),
마무리는 언제나 끝 절인 “······평화를 주소서”라는 기도로 끝낸다. 회중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외울 때 사제는 축성된 빵을 쪼갠 후에 손을 모으고 영성체 전 기도를 바치는데 “가” 혹은 “나”의 형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조용히 기도한다.
기도가 끝난 후 사제는 쪼개어진 성찬의 빵을 성반이나 성작(미사통상문에는 ‘성체를 성반으로 받쳐 들어 올리고’라고 되어 있지만, 성작으로 받쳐 들 수도 있다.
참조 미사경본 총지침 84항) 위에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며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축성된 빵 즉 성체를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는 이유는 성체가 나누어져 있음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나누어져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쪼개진 빵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상징한다.
또한 신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즉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준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는 의미를 가진다.
2009년 5월 22일자 수원교구 i신문 바로가기: http://casw.kr/tmvY4H
성체를 거양 할 경우, 성체의 높이는 사제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적당하다.
그 이유는 과거에 제단이 높지 않거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벽을 보면서 미사를 거행하였고, 성체를 거양했을 때 신자들이 성체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제는 높이 들어 거양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럴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성체는 사제와 신자들은 바로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를 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실에 모셔둔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보다, 신자들이 현재 거행되고 있는 성찬례를 통해 축성된 성체를 지금 이 순간(Hic et nunc)의 영성체 예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본당에서 성체를 너무 많이 축성하여 항시 감실에 보관하는 것 보다, 적당량의 성체를 감실에 보관하고,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는 매번 축성되는 성체를 영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하기 전에 신앙 고백을 하여야 한다. 사제가 성체를 들고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고 외치면 신자들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고백을 해야 한다.
이 때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붙인 칭호와 동시에 초대받은 이들에 대한 천사들이 말하는 성경에(묵시록. 19, 9) 근거를 둔 고백이다.
그리고 신자들의 응답은 백부장의 고백(마태 8,8)에 근거하여 겸손한 자세와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이다.
미사에서 신자들의 고백의 목소리는 다 중요하지만 성체를 모시기전에 하는 고백은 신자들이 평화스러움과 함께 벅찬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굳은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체를 하는 모든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바로 옆의 형제자매와 평화의 인사를 나눈 것을 기억하면서 기쁜 마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영성체 행렬에 참가하는 신자들은 선택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경건하게 제단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주석 37) 참조, 이홍기, 미사전례, 분도출판사, 1997, 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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