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뜻(2)

주님이 당신 교회 안에 늘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분을 뵐 수 있는 곳이나 방식은 전례 거행만은 아닙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찾아갈 때, 살아계신 주님이 거기에서 드러납니다.
교도권이나 기도에서도 그분을 뵈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장 중요하고 뿌리가 되는 곳은 전례라고 믿고 가르칩니다.
주 그리스도는 전례에서 눈에 보이는 표시를 통하여 살아계십니다.
그분 이름으로 모인 회중, 그분의 대행자인 봉사자, 말씀, 특히 그분 스스로 말씀하시는 복음 선포, 그분이 제정하신 성사들, 특히 성찬례(미사)에서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그분은 현재 실제로 살아계시며 당신 사제직을 수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전례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 또는 주님을 만난다는 것을 무슨 뜻일까요?
세례가 그렇듯 주님과 함께 세상에서 죽고 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르면 육적 사람에서 벗어나 영적인 사람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전례에서는 특별히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누리는 것, 천상 전례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전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는 것은 세상의 주인, 역사의 주인을 뵙는 것이고, 주님을 뵌 사람은 세상과 역사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임을 깨닫고 그분을 찬양합니다.
나아가 그는 세상과 역사의 주인이며 중심은 내가 아니라 자연과 형제들임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었다는 말이고, 나에게서, 나를 둘러싸고 다스리는 집착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사실 자기중심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세상의,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은 자기를 섬겨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 헛된 꿈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고 닦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살기 좋은 세상의 조건인 사랑은 자기에서 벗어나 예를 되찾을 (극기복례) 때 실현된다고 가르치셨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예”를 두고 “상대가 세상의 중심,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고 풀이를 하더군요. 전례는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보여주며 거기에 들어갈 힘을 줍니다.
전례 거행을 무엇을 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전례학자는 전례를 놀이에 견주어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놀이와 전례는 어떤 이해관계에 묶여 있지도 않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사실 세상의 삶에는, 특히 경제, 사회, 정치에는 만물을 수단으로 보려는 관점이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사로잡히게 되면 땅, 강, 산, 채소, 닭, 소, 나아가 시간이나 노동, 사람 자신과 신까지도 도구로 만들고 닦달하여 더 많은 열매를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못 내거나 덜 내면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삶을 진지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만, 여기에 사로잡히면 그 삶은 늘 분주하고 답답하고 겉에서 돕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거룩한 놀이를 한 사람은 꽉 막히고 피곤한 삶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다른 세상을 보게 되고 거기서 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또 전례는 예술에 대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참된 예술도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정보를 주거나 교육을 하거나 이름이나 이익을 얻는 것은 그저 따라오는 것들일 뿐이지요. 예술 작품에는 따지고 보면 자기 얼굴, 자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참된 자기 얼굴, 영혼의 얼굴이 나타날 때 가슴에 닿는 작품이 됩니다.
뛰어난 작품은 모든 이가 지니고 있는 변치 않는 공통의 얼굴, 영원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참된 자기 자신, 곧 자기 안에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살아 있는 작품들을 관상하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례는 영원한 예술이며, 모든 예술의 원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례는 한마디로 하느님 앞에서 참된 예술 활동을 하는 것, 아이들처럼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전례는 노예의 삶에서 자유의 삶으로 옮아가는 구원의 잔치입니다.
이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전례는 누가 거행하는가? – 교회가 거행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눈에 보이게는 교회 공동체 전체가 (주례와 봉사자와 회중) 거행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지체는 백성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미사나 시간전례를 비롯하여 모든 전례 거행 때 촛불을 켜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지금 여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며, 잔치(축제)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려고 켭니다.
열쇠 말: 전례의 정신, 전례의 의미, 전례와 놀이, 전례와 예술, 전례와 상징.
(출전: 레지오 마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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