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번역은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 라고? – 200주년 사목회의 전례 의안 다시 읽기<3>
그리고 전례 의안은 마땅히 성직자 중심 전례를 경고한다.
한 때 교회 사제직이 구약의 사제계급처럼 이해된 때도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 전투하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처럼. 그 결과 거행과 회중 사이에 틈이 커졌고, 신자들은 사제에게 기도(제사)를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퍼졌다
(회중은 돈 내고 구경만 하면 된다!). 거룩한 것은 거룩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생겨났다. 그래서 한 미사에서 독서자가 독서를 해도 유효성 때문에 사제는 다시 한 역사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주례 인사에 대한 백성의 응답 “또한 사제(부제)와 함께.” 번역을 짚어 볼 수 있다.
백성이 응답하는 대상은 사제라는 직분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인격체로서 주례이다.
나아가 교회는 이렇게 가르친다. “고대 교회의 유산에서 나온 특정 표현들은 가능한 직역을 함으로써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자들이 응답하는 말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 (올바른 전례 56항).
그 밖에도 표현에도 가끔 또는 부분으로 덜 쇄신된 우리 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 가지만 짚어 보자.
전례 개혁 때 미사 참회 예식을 개정하면서 교회는 뉘우칠 탓의 대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넣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와 의무를 소홀히 하여 많은 죄를 지었으며” 대신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로 하였다.
의무를 다하지 못해 지은 죄는 슬며시 비켜가는 느낌을 준다. 개혁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다.
한편, 전례 의안이 말하는 “쉬운 말”도 새겨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례서에 아직도 남겨 둔 천주, 성부, 성자, 성령, “성모” 같은 한자말 또는 그냥 “거룩한”을 붙인 이름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전례에서 하느님, 아버지, 아들(아드님), 어머니라는 말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물론 고쳐야 할 다른 용어들이 더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12월 25일 “주님의 탄생” 대축일 이름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을 “석가 탄신일”이나 “석탄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쉬운 “부처님 오신 날”로 바꾸었다.
우리는 왜 “성탄절” 대신 “예수님 오신 날”이라고 할 수 없을까?
사목회의 전례의안은 현실과 사목을 반영한 문헌이다.
여기에 보이지 않은 글자로 기록된 성령의 숨결도 함께 읽어야 한다.
아울러 200주년 사목회의의 모든 주제는 전례의 빛을 받아야 한다.
사목, 교육, 영성, 선교, 법 …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마찬가지로 교회 활동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전례헌장 10).
믿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사는 것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Lex credendi-lex orandi-lex viv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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