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요한의 아들인 시몬 베드로(Simon Petrus, 6월 29일)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Andreas)는 공관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 출신이고(마르 1,21-310, 요한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 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다(요한 1,35-42).
얼마동안 그들은 간헐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주님이 갈릴래아로 되돌아 오셨을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시면서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Scythia)와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아카이아(Achaia)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에 그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것은 안드레아 사도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의 꿈에서 지시된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는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강론 : (마태 4,18-22)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18-20)."
마태오복음에는 '그물을 버리고' 라고만 되어 있는데
루카복음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루카 5,11)'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린 것은 직업을 버린 것이고(어부로서의 인생을 버린 것이고),
그것은 사실상 모든 것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물을 버린 것은 그것이 악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부에게 그물은 선한 것입니다.
그들의 어부라는 직업 자체도 선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좋은 것들을 버렸습니다.
이것은 '진주 상인의 비유'와 같습니다.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5-46)."
값진 진주를 얻으려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야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가진 것을 처분하기가 아깝다고 하면서 움켜쥐고 있으면
값진 진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해도
최고로 좋은 것을 얻으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악한 것이라면 무조건 버려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소유한 채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이 말씀에서 '부자'는,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애착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바늘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낙타가 될 뿐입니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라고 다시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물'을 버린 것은
자기들의 소유물과 인연과 인생 전체에 대한 애착을 버린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버렸을까?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걱정했고(마태 16,7 ; 마르 8,16),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했고(마태 20,21 ; 마르 10,37),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고
논쟁했습니다(마르 9,34 ; 루카 9,46 ; 루카 22,24).
그리고 믿음이 약하다고 예수님한테 혼난 일이 많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하면,
그들은 처음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권력욕과 명예욕 등을 버리지 못했고,
아직 믿음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버리고
위대한 믿음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버리지 못한 것들을 보면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할 때 사용한 것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사탄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마태 4,3).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유혹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을 시험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마태 4,6).
이것은 믿음을 흔들기 위한 유혹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영광을(권력을) 가지라고 유혹했습니다(마태 4,9).
이것은 권력욕과 명예욕을 부추기는 유혹입니다.
사도들이 버리지 못한 것들과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유혹의 내용들은
모든 신앙인들이 실제로 날마다 겪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정말로 신앙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어떤 힘든 일을 당하게 되면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하는데도,
실제로는 명예욕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높은 자리를 욕심내지는 않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으면 기뻐하고,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그것을 더 바라게 되는 모습...
또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면 힘들어 하는 모습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계속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루카 9,23)."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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