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1월 22일 다해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3. 11. 22. 00:22

 

 

여러 필사본으로 전래된 성녀 체칠리아(Caecilia)의 순교록은 5세기 중엽에 기록되었다. 그 전승들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4월 14일)라는 귀족 청년과 결혼하였으나, 결혼식이 끝난 후 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하였으며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 주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성녀 체칠리아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 체칠리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그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 4월 14일)도 후에 천사를 보고 세례를 받았다.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 형제는 그때부터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다가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의 미움을 사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신전에 제사를 바치라는 행정관의 강요를 거절하여 심한 매질을 당한 후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 4월 14일)와 함께 참수되었다. 성 막시무스는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성녀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그녀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방법은 그 당시 흔히 사형수에게 적용된 것으로 욕실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목욕실에 가둔 지 24시간이 경과하였어도 성녀 체칠리아가 죽지 않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다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형리의 서툰 솜씨로 목을 베인 후에도 성녀는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순교 연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성녀 체칠리아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내심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행적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성녀는 이 학원의 수호자로 지칭되었고, 이후 성녀 체칠리아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성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강론  :  (루카 19,45-48)

 

<성전, 교회, 종교>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 19,46)."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특정 공간에 관한 훈계가 아니라,

당시의 유대교 전반에 대한 비판입니다.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이고,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이고,

성전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제들과 장사꾼들은 공모해서 성전에서 장사를 하면서

폭리를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습니다.

 

또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수익금을 자신들이 가짐으로써 사리사욕을 채웠는데,

그것은 종교를 사유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폭리, 착취, 사유화, 모독 등이 바로 강도짓입니다.

강도짓을 하는 자들이 운영하는 성전이라면 그곳은 강도들의 소굴입니다.

물론 다 그랬던 것은 아니고, 착하고 순수한 사제들과 신자들도 있었지만,

당시의 사제들이 대체로 그랬고, 그들이 성전을 그렇게 운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신 일은(루카 19,45)

사실상 종교개혁이었는데,

당시의 사제들과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개혁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일 방법만 찾았고(루카 19,47), 결국 죽였습니다.

 

'성전'을 각 개인으로(또는 각 개인의 몸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1코린 3,16 ; 6,19),

그렇더라도 종교의 문제와 각 개인의 문제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 모인 종교라면 그것은 돈만 밝히는 집단이 될 것이고,

돈만 밝히는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 함께 휩쓸린다면

역시 돈만 밝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과 말씀은

당시의 유대교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교회에도 심각한 경고가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 사건은

정말로 아름답고 좋았던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첫 번째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이었는데,

그 사건은 돈에 대한 탐욕이 원인이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리스계 유대인들이 매일 받는 양식의 배급이 불공평하다고

히브리계 유대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는 일이 생겼습니다(사도 6,1).

그 일도 역시 초대교회 공동체의 불미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의 삶이든 교회 운영에 관한 일이든 간에, 또 돈이든 양식이든 간에

물질적인 것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저절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고, 죄가 늘어나게 됩니다.

 

사탄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죄를 짓도록 사람들을 유혹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에 마성(魔性)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 자체가 사탄이라는 뜻은 아니고, 돈에 사탄의 속성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느냐, 돈의 주인이 되느냐, 는

돈을 사용하는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ㅡ '재물을 섬기지 마라.' ㅡ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재물(돈)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사용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용하되 그것들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성전이라든지 교육관 같은 건물들을 신축하거나

수리하거나 증축해야 할 때도 있고,

또 하느님을 위해서 어떤 행사나 사업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교회를 운영하다 보면 하느님을 위해서 할 일은 많은데 돈은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함정에 빠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도

돈 걱정만 하다가 하느님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걷는 입장에 있든지 헌금을 하는 입장에 있든지 간에

헌금에 대한 압박감에 눌려 있다면,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못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못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탄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루카 12,22)."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 운영에도 적용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만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하면 됩니다.

교회의 일은 하느님의 일이니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은 하느님께서 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집'이라는 말을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집'

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성전에서(교회에서, 또는 종교에서) 사랑을 주고받지 않고 돈만 주고받는다면,

그곳을 성전이라고(교회라고, 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