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1월18일 다해 연중 제33주간 월요일(성베드로 대성전과 성바오로 대성전 봉헌)

dariaofs 2013. 11. 18. 07:06

 

                                                                (루카 18,35-43)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11월 18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복음 18장 35절-43절,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입니다.

 

그 눈먼 이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마르 10,46).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소문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소문만 듣고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거지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몇 푼의 돈을 달라는 뜻인데, 바르티매오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가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셨고, 다시 볼 수 있게 된 바르티매오는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눈이 멀어서 날마다 구걸을 하던 거지가 눈을 뜨게 되자마자 한 일이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눈을 뜬 다음의 바르티매오의 모습에서

눈을 뜨기 전의 그의 여러 가지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다시 보게 되는 것만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자기 인생의 길을 보여 달라고 청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야훼여, 당신의 길을 가리켜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당신만이 나를 구해 주실 하느님이시오니,

당신의 진리 따라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날마다 당신의 도움만을 기다립니다(시편 25,4-5.공동번역)."

 

아마도 분명히 그는 새로운 인생을 갈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새로운 인생을 예수님 안에서 찾았고, 얻었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로 삼아서 데리고 가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보게 된 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게 된 일도

그의 갈망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사이다에서 어떤 눈먼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하셨습니다(마르 8,26).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는 말씀은 보통

"새로운 인생을 살아라." 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바르티매오처럼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

그냥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을 구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달라고 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이시지 않고 그를 돌려보내시면서

"집으로 돌아가, 하느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을 다 이야기해 주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8,39).

그 사람에게 임무를 주시긴 했는데, 데리고 가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과 비교해 볼 때,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됩니다.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를 겉으로만 보면,

그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가 만난 일도, 바르티매오가 눈을 뜨게 된 일도,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일도 모두

하느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의지가 작용해서

바르티매오를 뽑으시고 부르신 일이라는 것,

그리고 바르티매오가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르티매오가 눈먼 거지였다는 점과

예수님 덕분에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점 등을 모두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 것은

자기 인생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거지였다는 점은, 날마다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또 그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마르 10,50) 예수님께 간 것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바르티매오가 새로운 인생을 갈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저 몇 푼의 돈이나 달라고 청했다면?

그가 예수님의 자비 덕분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우연히 얻은 행운이라고만 생각했다면?

만일에 그가 눈을 뜬 다음에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섰다면?

그래서 거지로 살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면?

그랬다고 해도 그것을 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얻을 수 있었던 더 큰 것을 스스로 잃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허무한 세속의 것들만 추구하는 사람은 세속에서 허무하게 사라지고,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을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