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1월 11일 다해 연중 제32주간 월요일(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3. 11. 11. 00:30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 태생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이교도 장교의 아들로 부모가 파비아(Pavia)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로마(Roma)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를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Poitiers)의 힐라리우스(Hilarius)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쿰(Illiricum)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싸움으로써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프랑스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푸아티에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므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은수자로서 계속 생활하였다.

그가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인 마르티누스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강론 : (루카 17,1-6)

 

<용서>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우리가 형제를 용서해야 하는 것은

그가 곧 나 자신이고(루카 10,27),

그와 나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12,27).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과 형제애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여기서는 '일곱 번'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오복음에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마태 18,22).

'일곱 번'이든 '일흔일곱 번'이든 간에

무한정 용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이 무조건 용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형제'가 진실하게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습관적으로 회개를 한다면,

그 회개를 진실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우선 먼저 그의 나쁜 습관부터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형제를 꾸짖는 것은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를 회개시키는 것은 용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벌써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를 했다면

꾸짖지 말고 바로 용서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런데 만일에 꾸짖어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5-17)."

 

지금 이 말씀을 보면 꾸짖는 과정이 3단계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세 번만 꾸짖고 그것으로 끝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3단계로 꾸짖으라는 말씀은,

죄인을 회개시키는 일이 사적으로 잘 안 되면 공적으로 하라는 뜻으로,

즉 공동체가 함께 나서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공적으로도 안 되면 그때에는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용서를 주려고 해도 안 받으려고 하면,

용서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반대로 회개를 했는데도 용서를 안 하면,

그것은 용서를 안 하는 쪽에서 죄를 짓는 일이 되고,

회개했던 그 죄인을 다시 죄 짓게 만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 짓게 하는 죄'에 대해서 아주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루카 17,2)."

 

정말로 진실하게 회개를 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하는데도

단순히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회가 그를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다시 범죄자가 된다면, 그것은 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용서' 라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

또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용서하기는커녕 천벌이 내리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회개 여부와는 상관없이 용서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억울한 사정을 하느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믿음도 필요하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라는 믿음,

즉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도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도 은총입니다.)

 

악인이 참으로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죗값을 치르면서(보속하면서)

겸손하게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청하기를 기대하는 일이

어떤 때에는 돌무화과나무가 바다에 심어지는(루카 17,6) 일처럼

실현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는 것으로 생각될 때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믿음만 있다면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스테파노는 피살자이고 사울은 살인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테파노는 죽기 전에

살인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사도 7,60).

살인자 사울이 나중에 회개하고 위대한 바오로 사도가 된 일은

아마도 스테파노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일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