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1월 4일 다해 연중 제31주간 월요일(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3. 11. 4. 00:30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또는 가롤로)는 1538년 10월 2일 이탈리아 북부 마죠레 호수 근처의 아로나 성(城)에서 지베르토(Giberto Borromeo) 백작과 교황 비오 4세(Pius IV)의 여동생 마르게리타(Margherita de Medici)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서 12살 때 산 그라시니아노(San Gratiniano) 수도원에서 삭발례를 받았다. 그 후 밀라노로 가서 알치아티(Alciati)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1552년 파비아(Pavia) 대학교에 진학하여 1559년에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59년 12월 25일 그의 외삼촌인 지안 안젤로 추기경이 비오 4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을 계승하게 되었는데, 새 교황은 조카인 카롤루스 보로메오를 로마(Roma)로 불러들였다. 1560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보로메오가 가장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분야는 교황청 국무성 장관으로서의 직무였다.

 

특히 그는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 제3회기 동안 그의 외삼촌인 교황에게 가장 열성적이고 믿음직한 협력자이자 지원자였다. 카롤루스는 공의회 운영의 훌륭한 지도자로서 임무를 수행했고, 마지막 회기에서 칙서들을 성문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562년 그의 형 페데리고(Federigo)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로메오 가(家)의 수장 직책을 거절하고 1563년 7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려고 더욱 분발하였다.

 

그는 트렌토 공의회가 요청한 교리교육과 미사 전례 그리고 성무일도 작업들을 두루 감독하였으며,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하여 그가 대주교로서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밀라노 교구를 모범적인 주교좌로 만드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또한 그는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윤리와 생활 태도 개선을 위하여 유익한 기준을 마련하였으며, 성직자 교육을 위한 신학교 설립, 어린이들의 종교 교육을 위한 그리스도인 교리회 설립 및 자신의 교구 내에 거주하는 예수회를 격려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였고,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계 대학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호의적이었으며,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 11차례의 교구 시노드(Synod)와 6번의 관구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후보자들을 위한 단체의 성격을 지닌 ‘성 암브로시우스의 헌신회’(지금은 성 카롤루스의 헌신회)를 설립하였고, 주로 설교 활동에 종사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타락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데 정력을 기울였다.

1567년 그는 주교의 관할권에 대한 밀라노 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사건의 발단은 그가 나쁜 생활에 물든 평신도 여러 명을 투옥시킨 것으로 주교좌가 시당국에 의하여 심한 공격을 받게 되자 그는 그들을 모두 단죄하였다.

 

재차 그의 주교직이 산타 마리아 델라스카라의 시의원들로부터 도전을 받자, 교황은 그를 후원하고 시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는 어느 자객으로부터 상처까지 입었다.

 

1576년 페스트와 기근으로 온 주민들이 큰 난리에 빠졌을 때, 그는 한 달 동안 매일 3천여 명의 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시의회와 교회 관할권 사이의 분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카롤루스는 그 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하였다.

그는 영국 선교 길에 오르는 수많은 젊은 사제들을 접견하고 지원하였으며, 1583년에는 스위스 교황사절이 되어 그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를 상대로 설교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1584년 11월 3일 밤에 밀라노에서 사망하여 주교좌성당의 중앙 제대 아래 묻혔다.

그는 가톨릭 개혁운동의 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학문과 예술의 수호자였다. 비록 그가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있었지만 항상 겸손하게 처신하고 성덕을 높임으로써 개혁의 반대자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권력을 남용한 적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카롤루스 보로메오는 1610년 11월 1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강론 :  (루카 14,12-14)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루카 14,12)."

이 말씀에서 '부유한 이웃'은

자기에게 세속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는 것이 죄는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은 '만'을 넣어서 읽어야 합니다.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만' 부르지 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고 가르치실 때,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루카 6,32)."

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자기들끼리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랑에는 울타리가 없어야 합니다.

 

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보답을 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 서로 초대하고 서로 보답하는 것은

울타리를 쳐놓고 편을 가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사랑의 정신을 거스르는 일이 되고,

그래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예수님께서는 앞에서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라고 표현하셨는데,

여기서는 '잔치'로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당신의 가르침은

그저 친한 사람 몇 명이 모여서 하는 식사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잔치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점심이나 저녁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초대한 잔치입니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한마디로 줄이면

'소외계층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편 가르기를 해도 안 되고, 사람을 차별해도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이 가르침을 반대로 생각하면, '작은 이들'을 잘 대접하면,

그 일을 그들의 수호천사들이 하느님께 직접 보고 드려서

하느님의 상을 받게 해 줄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온 마을의 가난한 이들을 모두 부르고,

나그네들과 거지들도 모두 들어오게 해서 배불리 먹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습이 연상됩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

이 말씀은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그들은 너에게 보답할 수 없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너에게 보답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그들이 보답할 수 없는 것이 행복의 이유가 아니라,

그들 대신에 하느님께서 보답하신다는 것이 행복의 이유입니다.

 

여기서 '행복'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부유한 이웃만 초대한 다음에 그들에게 보답을 받게 되면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보답이 없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는 것, 그것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루카 6,24-25)."

여기서 '불행'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는 것을 뜻하고,

이것은 곧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32-35)."

 

초대교회 공동체가 공동 소유를 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는 점과

자기 것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법으로 정해서 강제로 거두어들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서

스스로 기꺼이 내놓았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