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5,1-12ㄴ)
<성인의 통공>
'모든 성인 대축일'은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사시는 분들을 경축하는 날이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믿고, 희망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그분처럼 되고,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는다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시성식을 하고 성인으로 선포해야만 성인인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하느님과 함께 사는 분들은 모두 성인입니다.)
제1독서 말씀은
묵시록 저자가 성인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인데,
이것은 충실한 신앙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를 미리 본 것입니다.
묵시록 저자는 그 수를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말합니다(묵시 7,4).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인 수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뜻합니다.
"그 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묵시 7,9)"
아무도 수를 셀 수 없다는 말은,
수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지금은' 모른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수가 많든지 적든지 간에
아직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정원제가 아니라 자격제이기 때문입니다.
(자격을 갖춘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자격이 없다면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뜻이 됩니다.)
어떻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작은 이'일 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인으로 태어나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도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승천의 영광을 얻으신 것은 아닙니다.
성모님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고,
더 많이 노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노력이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도 그렇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신앙생활을 마라톤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우리는 결승점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을 향해서 여행을 시작하면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천사들과 성인들과 가족과 이웃들이 도와줍니다.
그래서 그 길은,
걸어가든지 뛰어가든지 간에 가는 것은 각자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만,
사실은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니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결승점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탄이 유혹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욕망이 방해하기도 합니다.
결승점이 정말로 있는지,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의심하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고,
쉽고 편하고 빠른 길이 따로 있다고 유혹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그런 유혹들을 물리치려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유혹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마르 9,29).
'모든 성인 대축일'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성인들에게 부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성인들은 이기심도 없고 하느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들이니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자기 자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인들의 기도로 우리가 은총을 받고,
우리의 기도로 이웃이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통공'입니다.
신앙 여정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길이 아닙니다.
마라톤으로 비유했지만 한 사람만 우승하는 시합이 아니라,
서로 도와서 함께 우승할 수 있는 동반 여행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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