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2월 3일 가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dariaofs 2013. 12. 3. 00:00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 또는 프란체스코)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Paris) 북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왜냐하면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였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상치안(Sancian)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대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강론   :   (마르 16,15-20)

 

<모든 피조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예수님의 말씀에서 '모든 피조물'이라는 말이 특이합니다.

이 말은 뜻으로는 '모든 사람'이지만,

'모든 피조물'이라는 표현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글자 그대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라는 말은 자연계(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모든 피조물'이라는 말은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들은 "복음 선포는 이 세상 전체를 변화시켜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저 단순히 교회 신자 수를 늘리는 것만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 보호 운동과 동물 보호 운동 등도

복음 선포 활동에 속하는 일이 됩니다.)

 

만일에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사람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면

마치 사막에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처럼 정말로 삭막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왕국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 11,6-8)."

 

이 예언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 말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는

행복한 세상을 묘사한 예언인데,

어떻든 모든 동식물이 조화와 평화를 이루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내용에서

사람들 외에 언급된 생명체는 생명나무뿐입니다(묵시 22,2).

그런데 생명나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하느님께서 그 열매를 사람들이 먹지 못하게 차단하신 나무입니다(창세 3,24).

그래서 종말의 하느님 나라에서 사람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된다는 것은

천지 창조 당시의 에덴동산이

완전하게 복구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는

온갖 동식물이 함께 행복을 누리게 되는 에덴동산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그 에덴동산이 복구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명령이고,

또 모든 생명체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함께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명령입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학대하는 일들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이제 '모든 피조물'을 '모든 사람'이라는 뜻으로 좁혀서 생각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약육강식의 모습이 없는 그런 세상,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복음 선포 활동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편 가르기'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복음 선포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만 모아서 '우리 편'을 키우고,

우리 편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내치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의 적이(원수가) 아닙니다.

박해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태 5,44).

 

끝까지 믿지 않고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단죄를 받겠지만,

그 단죄는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랑해야 할 형제이고 가족입니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고 종교와 종파가 다르고 사상과 의견이 다르다고

적대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하셨으니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증오심, 이간질, 이기심, 욕심' 같은 마귀의 속성부터 없애야 합니다.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마르 16,18)

가난하고 힘없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 실천을 거부하면 안 됩니다.

사랑에는 어떤 제한도 조건도 없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전쟁이 아니라 사랑의 봉사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의 권력이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