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2월 7일 가해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3. 12. 7. 00:00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갈리아(Gallia)의 지방 장관으로 재직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339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사망 후 로마(Roma)에서 인문 교육을 받아 수사학과 법학 외에 그리스어에도 능통하였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그는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뛰어난 실력과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빨리 출세하였다.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의 지방 법원에서 잠시 근무를 하다가 지방 장관 프로부스(Probus)의 고문이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370년에 에밀리아 리구리아(Aemilia-Liguria)의 수도인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다. 암브로시우스가 그 지방을 다스리던 때 밀라노에는 서방 교회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대표자인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주교로 있었다. 아욱센티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집정관인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을 중재하면서 암브로시우스는 성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에게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을 하였다.

이때 뜻밖에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암브로시우스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할 수 없이 수락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은 뒤, 8일 후인 373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직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지위이다. 그리고 밀라노는 로마제국 서부 지역의 행정적인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교 역시 불가피하게 정치에 개입되어 있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개종자들, 수없이 많은 이교도들 그리고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 등 모든 문제를 새 주교인 암브로시우스가 해결해야만 했다.

주교가 된 후 성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신학, 성서 등을 연구하였다. 그에게 신학을 가르쳐 준 사람은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된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anus) 신부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당대의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서방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주교품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암브로시우스는 황제를 설득하여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제가 전투에서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자 암브로시우스는 또 다시 막시무스를 설득하였다.

또한 그는 로마의 원로원 회의실에 승리의 여신상과 제단을 재건하려는 로마 시 집정관 심마쿠스(Symmachus) 일파의 시도를 분쇄하는데 성공하였으며, 385년에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어머니로 아리우스주의 추종자인 황후 유스티나에 의해 일단의 무리들에게 밀라노의 성당들을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내주라고 명한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성공적으로 저항하였다.

390년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살해하자 그에 대한 징벌로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을 때, 군인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7,000명이 살해당하였다. 이에 성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암브로시우스는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공식 참회 행위로 보속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이에 순순히 응해 성탄 때 제복을 벗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항상 다음과 같은 원칙 밑에서 행동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393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갈리아에서 아르보가스투스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는데, 그들의 대표자 에우게니우스는 우상 숭배를 재건하려고 시도하는 무리들이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그들의 살인과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 내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수개월 후에 죽게 되자, 성 암브로시우스가 그의 장례 때 기도하고 설교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도 그 후 2년 뒤에 밀라노에서 운명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이며,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 세계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부흥을 새로운 단계에 돌입시킨 분이시다. 또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행정가이면서도 성서, 신학, 신비신학 등 설교를 중심으로 설파한 그의 지식 또한 괄목할만하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단에 빠져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를 이끌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했으며, 387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의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성 암브로시우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분으로 추앙받는다. 또한 그의 저서 중에 “신비에 대해서”란 책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로 세례, 견진 그리고 성체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시편을 대중적인 찬미의 기도로 활용하도록 가르친 첫 번째 인물이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성직자들의 직무론”(De Officiis Ministrorum), “동정녀”(De Virginibus), “신앙론”(De Fide) 등이 있다.
 

 

강론   :   (마태 9,35-10,1.5ㄱ.6-8.)

 

 

<일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이 말씀은 표현되어 있는 그대로만 보면

"나와 함께 일하려는 협력자가 부족하니

아버지 하느님께 더 많은 협력자를 보내 주십사고 너희가 청하여라."

라는 뜻인데, 여러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협력자가 없으면 일을 못하시는 분인가?

꼭 협력자가(일꾼이) 필요했던 것일까?

열두 사도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면 당신이 직접 뽑으시면 되지 않은가?

하느님께서 제자들의 청을 들으시고 일꾼들을 보내 주신다면

그 일꾼들은 어디에서 오는 일꾼들일까?

하느님은 꼭 우리가 청을 해야만 일꾼들을 보내 주시는 분인가?

처음부터 넉넉하게 일꾼들을 보내 주시면 안 되는가?

일꾼들이 꼭 선교사들, 또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처럼

어떤 직분을 맡은 사람들만을 뜻하는 말인가?

 

사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협력자, 또는 일꾼이 없어도 혼자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함께 일하시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처음에 에덴동산을 만드셨을 때,

아담에게 동산의 관리를 맡기신 것은(창세 2,15)

하느님께서 혼자 하실 수 없는 일이라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게 하실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하느님의 세상이면서

동시에 인간들에게 주신 세상이기 때문에

인간들 자신들도

스스로 자신들의 세상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고, 메시아의 나라를 완성하는 일은

제자들이나 협력자가 없어도 예수님 혼자서 하실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 그 일은 인간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들도 자신들을 위해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꾼들'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꾼들'을 꼭 선교사나 성직자나 수도자로만 좁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이고,

교회는 그분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입니다.

하느님의 일은(예수님의 일도) '그분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입니다.

따라서 '일꾼들'이라는 말은 모든 신앙인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선교활동의 대상이었고 객체였지만,

믿게 된 다음에는 선교활동의 주체가 됩니다.

모든 신앙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한 사람의 선교사가 됩니다.

성경에서 제자라는 말과 신자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수확할 때가(마지막 때가) 다가오는데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적다."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아버지 하느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달라고 청하여라." 라는 뜻이 됩니다.

(또는 "모든 사람이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기도하고 노력하여라." 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모든 사람의 수와 신앙인들의 수를 비교해 보면,

신앙인들의 수는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하느님께서 보내 주시는 일꾼들은

어디 다른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자신이 더욱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예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일꾼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능동적인 일꾼이 되어야 하고,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일꾼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일꾼들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시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느님(예수님)은 함께 계셔 주십사고(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지 않아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고,

일꾼들을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고 청하는 것은

우리 쪽에서도 하느님(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