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월 7일 가해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

dariaofs 2014. 1. 7. 01:00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페냐포르트 태생인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1222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볼로냐(Bologna)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또 설교한 경험이 풍부하였다.

 

1230년 그는 로마(Roma)로 초빙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청의 회의와 칙서 등을 소장하는 업무를 맡았고, 이것의 결과로 '숨마 카수움'(Summa Casuum)이 발간되었다.

1236년 에스파냐로 돌아 온 성 라이문두스는 2년 동안 총장직을 역임한 뒤, 모슬렘과 유대인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를 격려하여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쓰게 하였으며, 아라비아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그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와 함께 '메르체다리오회'의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생애를 살았던 성 라이문두스는 1275년 1월 6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바르셀로나의 카타리나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878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좌 성당의 요한 바오로 소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교회법 학자의 수호성인인 그는 1601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의 축일은 1671년에 1월 23일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으나, 1969년 성인이 선종한 다음날인 1월 7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강론   :   (마르 6,34-44)

 

<예수님, 교회>

 

1월 7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빵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일도 중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한 끼 식사를 주신 일회성 사건일 뿐이고,

인간 세상의 식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신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빵이 아니라 그 빵을 주신 예수님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빵의 기적'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4)."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처지를 가리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데,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자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우선 먼저 주신 것은

빵이 아니라 '많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 자리에 있었던 군중이 가장 먼저 원한 것은

빵이 아니라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빵을 먹게 될 것을 예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께 빵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군중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먼저 군중의 배고픔을 걱정했습니다.)

 

'빵의 기적 이야기'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구절은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르 6,42)."입니다.

'모두' 라는 말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라는 뜻입니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았습니다.

 

배불리 먹었다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배가 불렀다는 것만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기쁨을 얻었고 행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푸른 풀밭'에 모여 앉아서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시편 23장,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가 연상됩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 전에 많은 가르침을 듣고서 기뻐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기적의 빵을 먹고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과 행복'은 하느님 나라를 미리 체험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가르침)'과 '빵'도 중요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말씀과 빵을 통해서 얻게 된 '하느님 나라의 체험'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배불리 먹는 것만 추구한다면

얻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허기와 갈증 때문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체험은 스스로 마음 깊이 새겼다면 사라지지 않고,

그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빵의 기적 이야기'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구절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돈도 없고 빵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명령을 하신 것은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중을 해산시켜서 각자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자고(마르 6,36)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목자를 찾아서 온 양들을

목자 없는 처지로(원래 상태로) 되돌려 보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또는 교회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 청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러면 저희가 ......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마르 6,37)"

라고 항의하듯이 말했는데, 그들이 했어야 할 말은 그게 아니라,

"저희에게는 돈도 빵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마르 6,38)."

라고 하신 것은, 주님께 도움을 청하면서도 동시에

제자들(또는 교회) 안에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면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교회가) 모든 것을 주님께 청하기만 하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는 것은 실천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반대로 주님께 청하지는 않고(기도하지는 않고)

자기들의 인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예 믿음이 없는 태도이고, 그런 경우라면(기도하지 않는다면)

자기들이 예수님의 제자라고(교회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