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월 21일 가해 (성녀 아녜스 동성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4. 1. 21. 00:30

 

 

 

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명이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가 소녀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 아녜스는 집을 떠나 순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에게 끌려갔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온갖 고문 기구를 진열해 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직접 심문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어느 매음굴로 보냈으나, 성녀 아녜스는 그녀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가 총독 앞으로 이송되자 그는 참수를 명하여 그대로 실행되었다.

전해오는 많은 전설 가운데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성녀 아녜스가 순교자로서 처참하게 죽었으며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 근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성녀 아녜스는 동정녀의 상징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를 '어린 양'(Agnus 아뉴스; Agnes 아녜스)으로 묘사하였다.

 

강론   :   (마르 2,23-28)

 

 

<배가 고팠던 제자들>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시비를 걸고,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들면서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를 비판하시는 말씀이고,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에만 집중하다가,

또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만 집중하다가

그 논쟁의 원인이 된 제자들의 사정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제자들의 사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은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마태 12,1)."

그래서 예수님도 다윗이 '배가 고팠을 때' 했던 행동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배가 고팠을까?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거의 항상 먹을 것이 없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이'(마태 8,20) 떠돌아 다니셨던 예수님과

그런 스승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의 생활은

결코 호의호식하는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을까?

바리사이들이 알고 있는 율법을 제자들이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어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뜯어 먹었을까?

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변호해 주시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배가 고프니까 먹어도 된다.' 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자기들의 행동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논쟁하시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제자들이 안식일인데도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누군가가 "왜 못 참는가? 배고픔도 못 참고 율법을 어긴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배고픔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본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을 경험해 보신 분의 답변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굶어야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될까?

실제로 굶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답변은 제자들의 행동이 옳다는 뜻도 아니고,

다윗의 행동이 옳다는 뜻도 아닙니다.

제자들과 다윗의 행동이 율법을 어긴 것은 맞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픈 상황이기 때문에

율법 적용이 면제된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제자들이 '심심해서' 그랬다면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만일에 다윗이 따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행동했다면,

구약성경에 다윗을 비난하는 내용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왜 그렇게 굶주리면서도 예수님을 따라다녔을까?

만일에 혹시라도 제자들이 어떤 세속적인 보상을,

또는 부귀영화를 기대했기 때문에 따라다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모욕하는 일이 됩니다.

물론 제자들은 나중에 내세에서(하느님 나라에서)

'백 배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예수님도 그렇게 약속하시긴 했습니다(마르 10,30).

제자들은 정말로 그런 내세의 보상에 대한 믿음과 기대만으로,

순전히 그것 하나만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또 나중에 예수님 승천 뒤에 온갖 고난과 박해를 견디면서

사도로 살다가 순교한 것일까?

 

바오로 사도는 (사도단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답은 '사랑'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사랑.

 

사랑이 없다면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장).

사도들이 끝까지 남은 것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배반자 유다가 떠난 것은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율법도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