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또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체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567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독립 공국인 사보이아(Savoia)의 토렌스(Thorens)에 있는 가문의 성(城)인 샤토 드 살(Chateau de Sales)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Paris) 인근 안시(Annecy) 대학과 클레르몽(Clermont)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는 교회법과 일반법을 전공하여 불과 24세의 약관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법률가 자격 제의와 상원 의원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도생활을 위하여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1593년 12월 18일 안시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594년 샤블레(Chablais) 지방의 선교사를 자원하여 5년 동안 활동하였는데, 그곳은 칼뱅주의자들이 약 50년간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지역으로 사보이아 공국이 되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선교 지역이었다.
암살자와 칼뱅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599년 5월 22일 그는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가, 1602년에 선임 교구장이 사망하자 그를 계승하여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그는 곧 종교개혁자에 대항하는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인 그는 해박한 신학지식과 이해심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예비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1604년 그는 부르고뉴(Bourgogne)의 수도인 디종(Dijon)에서 유명한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 8월 12일)을 처음 만나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적인 우정으로 자라났다. 그 후 1607년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기존 수도회의 육체적 엄격함을 견디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Lyon)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뇌일혈을 일으켜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한 후 그 다음날인 1622년 12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신심생활 입문”(1609년)과 “신애론”(1616년)을 들 수 있다. 그는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는데,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한 첫 번째 공식 시복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는 1665년 11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으며, 1923년에는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르 3,13-19)
<사도들의 명단>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족보가 자주 등장하고 있고,
신약성경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복음서에 있는 사도들의 명단도 그런 족보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족보는 단순히 역사를 기록해 놓은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들의 명단도
단순히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도로 뽑으셨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은 문서가 아니라,
그들이 틀림없이 예수님으로부터 임명 받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교회의 공적 증언 문서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복음서가 완성된 것은 사도들이 활동을 시작한지 한참 지난 뒤이기 때문에
임명장이나 신분증 역할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복음서가 완성되기 전에도 열두 사도의 명단을 기록해 놓은
어떤 문서 같은 것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마르코복음 3장 13절-19절의 열두 사도의 명단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직접 뽑으셨다는 증언이 먼저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과 권한과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만일에 이 내용을 독립되어 있는 어떤 문서로 본다면,
열두 사도의 권한과 임무를 함께 적어 놓은 임명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의 이름도 명단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문서는 다른 열한 명에게는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가 되지만,
배반자 유다에게는 그가 예수님을 배반했음을 증언하는 문서가 됩니다.
그의 배반에 대한 증언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에, 사도단 안에서 배반자가 생겼다는 것을
복음서 저자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유다의 이름을 삭제했다면?
만일에 조금이라도 거짓을 기록했거나, 진실을 감추었다면,
우리는 그 책을 성경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다음에
실제로 그들에게 임명장이나 신분증 같은 것을 주셨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나중에 자기들을 알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자기들이 진짜 사도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했을까?
(낯선 곳에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들을 보면,
그 당시에 가짜 사도, 또는 가짜 선교사, 가짜 교리교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2코린 11,13-14).
신자들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가 사도라고,
또는 선교사라고 주장한다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서 새로운 규정을 정한 다음에
안티오키아로 보낸 편지를 보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사도 15,24)."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단이 임명하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선교사라고 자칭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편지에는 바르나바, 바오로, 유다, 실라스를 보낸다는 내용과
그 네 사람의 믿음과 권한을 보증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사도 15,26-27).
그 편지는 새로운 규정을 알리는 공문이면서
동시에 그 규정을 알리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신원보증서나 위임장, 또는 임명장 같은 문서 역할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예루살렘의 사도단은 세계 각지에 사도나 선교사들을 파견할 때
어떤 문서 같은 것을 만들어서 주었는데,
그 당시에 가짜 문서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이 항상 골칫거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서가 위조되었는지를 식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쓸 때마다 친필 서명을 했고,
그 서명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는 어떤 표시를 따로 했습니다(2테살 3,17).
(요즘에도 가짜 신부들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구에서 신부들에게 만들어 준 사제 신분증이 있긴 하지만,
속이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신분증도 위조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들이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사람은
거짓 사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2코린 11,4).
이 말을 반대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선포한 복음 말씀대로 살고, 실천하다가 죽는 사람이 '진짜 사도'이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로 임명하신 사람들이 진짜 사도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어떤 문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사도로 살았고, 순교자로 죽었습니다.
그 '삶과 죽음' 보다 더 확실한 신분증은 없습니다.
진짜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세례 증명서가 아니라 '삶'입니다.
신앙인답게 살다가 신앙인으로 죽어야 진짜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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