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6월 11일 가해 연중 제10주간 수요일(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dariaofs 2014. 6. 11. 01:00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그가 12사도에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으로 요셉(Josephus)이라 하였는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바오로(Paulus)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사도 11,22 이하).

 

그리고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로부터 그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안티오키아의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세 사람이 키프로스와 베르게 그리고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선교여행 길에 올랐을 때,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자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리가오니아의 이고니온과 리스트라로 갔으며, 여기서 그들은 신들로 인정받았으나 곧 돌 세례를 받게 되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

유대인 예식 준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그들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길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다른 방문 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요한 마르코를 반대하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나,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Roma)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에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위경인 바르나바의 편지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나바의 복음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듯하고, 바르나바의 행전은 요한 마르코의 업적일 것이다.

 

강론   :   (마태 10,7-13)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마태 10,7-8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는 명령은

사람들에게 복음을(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종말과 심판이 다가왔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공포심과 불안감만 심어주는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은 글자 그대로 '누구든지 듣고 기뻐하게 되는 소식'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기쁨'을 나누는 일입니다.

기쁨을 나누려면

자기 안에도 기쁨이 있어야(자기 자신이 먼저 기뻐하고 있어야) 합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라는 말씀은

당시의 사도들에게는 '실제적인' 명령이었겠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 말씀을

사랑을 실천하라는 '상징적인' 명령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상징적인 말씀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몸의 병은 병원에서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병들어 있거나 죽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들이 그 치유를 얻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안내(인도)하는 일입니다.

 

마귀들을 쫓아내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이 말씀을 넓은 뜻으로 보면,

이 세상의 악을 물리치라는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사랑도 전하라는 명령이기도 하고,

사랑 실천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복음과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랑 없이 복음만 전하면 신자수를 늘리기 위한 영업활동이 될 뿐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ㄷ)."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할 때의 기본자세이기도 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의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주는 것이 복음이고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사도들, 또는 선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이기심과 사심 없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이 명령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제자들의(신앙인들의) 선교활동은

'자기의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활동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주신 것'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복음과 사랑'만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금, 은, 구리 돈, 여행 보따리, 여벌 옷, 신발, 지팡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준비하는 물품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 자신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챙기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나는 생각(걱정)하지 않고 너만 생각(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가 먹고사는 문제를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일과 이웃의 구원만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먹고살기 위해서 선교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복음 선포를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일이 됩니다.

사도시대 때에 이미 그렇게 했던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큰 상처만 남겼습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이 말씀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복음과 사랑을 전해 주면

하느님께서 그 선교사를 먹여 주실 것입니다.

천사 역할을 하는 마음 착한 사람들을 통해서 도움을 주실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고...

그래서 "거저 주면 거저 받게 될 것이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할 때에는

'무임승차'나 '무전취식'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교활동을 핑계로 민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선교사가 활동비나 생활비 없이 선교활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그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가 걱정할 문제이지

선교사 자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