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6월 13일 가해 연중 제10주간 금요일(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4. 6. 13. 01:00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기사의 아들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쿠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121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220년 1월 16일 모르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 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 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르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쿠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쿠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타리파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운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46년에는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 교회의 전설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정도로 높이 평가해왔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하였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이는 어느 수련자가 허락없이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이 발현하여 돌려달라고 해서 그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우스 성인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를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안토니우스 성인이 탈혼 중에 일어난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강론   :   (마태 5,27-32)

 

<죄는 자기 자신이 짓는 것>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30)."

 

이 말씀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을 추구하라는,

또는 죄짓지 말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말씀에서 '오른 눈'과 '오른손'은 '죄의 원인'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눈'과 '손'은 실제 눈과 손이 아니라

우리를 죄짓게 하는 욕심, 욕망, 이기심 등을 뜻합니다.

(실제로 눈과 손을 잘라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런 식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너를 죄짓게 만드는 '재물에 대한 너의 욕심'을 버려라.

부자로 지옥에 가지 말고 가난하더라도 천당에 가도록 노력하여라."

또는 "너를 죄짓게 만드는 '권력에 대한 너의 욕심'을 버려라.

권력가로 지옥에 가지 말고 힘없는 사람으로 천당에 가도록 노력하여라."

 

사실 죄는 우리 자신이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과 손은 죄의 도구입니다.

(손이 죄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도구만 버리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죄를 지을 것입니다.

 

다윗 왕은 밧 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을 불러들여서 간통죄를 지었고,

그 죄를 덮으려고 다시 살인죄를 지었습니다(2사무 11장).

(다윗의 죄는 전형적인 '권력 악용 범죄'입니다.)

만일에 다윗이 자기 눈을 빼어 버렸다면 죄를 안 지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눈이 없어서 보지 못했다면 죄를 안 지었을까?

또는 왕이 아니었다면 죄를 안 지었을까?

 

나중에 다윗은 회개했지만,

자기의 눈을 빼어 버리지도 않았고, 자기의 권력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버려야 할 것은 눈과 권력이 아니라 음욕이었기 때문입니다.

도구는 그냥 도구일 뿐이고, 도구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어떤 마음으로 도구를 사용하는가?" 가 중요합니다.

 

한 가지 더,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죄를 지은 다음에 눈이나 손 탓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죄는 눈(손) 탓이니 그것을 잘라 버려라."가 결코 아닙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 '무엇' 때문이라고,

또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고,

환경이나 여건 탓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오직 "내 탓이오."뿐입니다.

 

아담은 죄를 지은 다음에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이 말은, "제가 죄를 지은 것은 저 여자 탓이고,

저 여자를 저에게 주신 당신 탓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고, 책임은 하느님과 여자에게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와는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 3,13)."

이 말은,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은 뱀 탓이라는 뜻입니다.

아담도, 하와도 모두 자기가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남 탓만 하면서 자기에게는 죄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말은 딱 하나, "제가 잘못했습니다."입니다.

 

하느님께서 나탄 예언자를 보내셔서 다윗 왕을 꾸짖으셨을 때,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고, 핑계를 대지도 않았고, 남 탓을 하지도 않았고,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라는 고백만 했습니다(2사무 12,13).

회개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8,7).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나는 죄가 없다." 라고 주장하거나

"잘못한 일이 조금 있지만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

라고 변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모두 '말없이' 떠나버렸습니다.

그 모습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붙잡혀 온 그 여자도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았고,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도 않았고, 살려달라고 빌지도 않았고,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아무도 없느냐?" 라고 물으시자

그때서야 겨우 "아무도 없습니다." 라고 한마디 했습니다(요한 8,11).

 

그 상황에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그 여자의 모습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면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이고,

회개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용서하신 것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지만,

그 여자 쪽에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