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7월 25일 가해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dariaofs 2014. 7. 25. 01:00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마태 20,20-28)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7월 25일의 복음 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을 위해서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하는 내용이 있고,

다른 열 제자가 두 사도를 불쾌하게 여겼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내용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무대 배경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지 않고 무대 배경만 보면서 사도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깎아내리는 것 같은 평가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7월 25일의 복음에서 중요한 내용은

사도들의 앞일에 대한 예언과 권력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마태 20,23)."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사도들이 겪게 될 박해와 순교를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모두 박해를 받았고, 순교했습니다.

사도라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했기 때문에

그런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그 헌신, 희생, 열정, 충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오른쪽과 왼쪽'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영예와 영광을 뜻합니다.

(이 말이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다."는

"내가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친분만으로 허락할 일은 아니다."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 등을 생각해서 직책을 맡기는 일이 많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런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미 다 정해 놓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 속에 우리도 포함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그래서 하느님 쪽에서 보면 정해 놓으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인간 쪽에서 보면 아직 정해져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에 모든 것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인간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다." 라는 말을 좋아하고

즐겨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말을 너무 남발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역사입니다.

 

예를 들면, 전쟁, 대재난,

또는 민족분열이나 식민지배 등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일치, 평화, 사랑, 행복입니다.

전쟁, 재난, 분열, 식민지배 등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악(惡)입니다.

따라서 그런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어떤 불행과 고통을 겪을 때

그런 일들을 전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불행과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런 일들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이 말씀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섬김으로써 높은 사람이 되어라."가 아니라,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

도 같은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떤 사람은 높고 어떤 사람은 낮은 그런 조직이 아니라

모두가 한 몸이 되고, 모두가 서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남들보다 더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긴다면 모두가 다 낮은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높은 사람은 없는 것이고, 모두가 다 똑같은 위치에 있게 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맡은 직책과 하는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책이 다르고 일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더 높은 자리와 더 낮은 자리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사람도 없고 덜 중요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몸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세속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권력을 얻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 라고 말씀하십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