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9월13일 가해 연중 제23주간 토요일(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4. 9. 13. 00:23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강론   :   (루카 6,43-49)

 

<좋은 나무, 나쁜 나무>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루카 6,43-44ㄱ)."

이 말씀의 '열매'를 '신앙인의 삶'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심판의 결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열매를 '삶'으로 생각한다면,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의 '삶'을 보고 그 사람이 좋은 신앙인인지(또는 의인인지)

나쁜 신앙인인지(또는 악인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당시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을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삶'이 '좋은 열매'가 아닌 것을 보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열매를 '심판의 결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의인은 멸망하지 않는다. 악인은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또 이 말씀은 "두고 보면 알게 된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기들은 좋은 나무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쁜 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멸시하고(루카 5,30),

일반 백성들을 '율법을 모르는' 군중이라고 무시한 것이

그것입니다(요한 7,49).

이것은 자기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세리들과 백성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좋은 나무이고, 누가 나쁜 나무인지는

심판 때에 확실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구원을 받는다면) 그 나무는 좋은 나무이고,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한다면)

그 나무는 나쁜 나무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겉모습만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내용을 오늘날의 우리 교회에 적용하면,

"단순히 교황, 추기경, 주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성직자, 수도자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나무라고 말할 수는 없다."처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도 잘 모르고, 교리도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나무라고 말할 수는 없다."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되면 우리는 많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쁜 나무인 줄 알았는데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물계에서는 '그 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나무'이고,

'그 나무'에서 '그 열매'만 따게 됩니다.

아무도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나 포도를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는 태어날 때부터 의인이었던 사람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던 사람도 없습니다.

또 무화과나무 같았던 사람이 타락해서 가시나무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가시나무 같았던 사람이 회개해서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지금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죄를 지으면 가시나무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고,

지금 가시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회개하면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직 모릅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되고,

'마지막'에만 잘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고,

또 '지금'과 '마지막'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에 "지금은 아무렇게나 내 마음대로 살고,

마지막이 되면 그때 가서 회개하겠다." 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사실상 회개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잘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판단하는 일은

(어떤 사람이 의인인지 악인인지 심판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한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면 안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좋은 나무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과 같은 교만한 태도입니다.

또 반대로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자포자기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죄를 짓는 일입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회개하고 보속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나무인지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그저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삶'이 심판의 결과로 직결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